"이란 핵합의 탈퇴가 북미 회담에 악영향" 전망 어긋나
북핵-이란핵 반대 방향으로 전개…미, 대이란 전방위 압박 전망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에 역사적으로 합의하면서 국제사회의 난제였던 북핵 문제가 해결의 물꼬를 트게 됐다.
그러나 이날 북미 회담보다 3년 전 국제적 다자 합의로 해답을 찾는 듯했던 이란 핵문제는 날로 악화하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란 핵합의 타결 이후 북핵 문제가 최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에 협력했다고 의심받는 우방인 북한과 이란의 운명이 미국을 중심점에 둔 시소의 양쪽 끝처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오르내리는 셈이다.
2015년 7월 타결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행 보증 결의를 거쳐 이듬해 1월 실제 이행됐다.
핵합의는 이란이 핵활동을 제한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정기 사찰을 수용하는 대신 핵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이란 경제·금융 제재를 완화는 '행동 대 행동' 교환이었다.
어느 정도 원만하게 이행됐던 핵합의는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공약했던 대로 지난달 핵합의 탈퇴를 선언하고 올해 8월부터 핵합의로 풀었던 대이란 제재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3년 가까이 잠잠했던 이란 핵위기가 다시 격발될 위기에 휘말리게 됐다.
IAEA가 이란이 핵합의를 이행한다고 11차례에 걸친 분기 보고서를 통해 확인한 만큼 다시 불거진 이란 핵위기는 미국 보수세력의 뿌리 깊은 이란에 대한 불신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란은 미국의 일방적인 핵합의 탈퇴에 맞서 EU의 3개 서명국(영·프·독)과 공조해 미국의 제재를 피하고 원유·천연가스 수출 지속, 금융 거래 등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U 3개국 정부는 핵합의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핵합의 이행 뒤 속속 진출한 유럽 대형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 부활을 이유로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이란은 일단 핵합의의 틀 안에서 우라늄 농축 능력을 증대하는 한편, EU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맞서 이란의 국익을 실질적으로 보증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은 10일 "EU와 기약없는 협상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다"면서 "핵합의를 살릴 수 있는 시한이 임박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다음 주 안으로 모종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재로선 미국의 핵합의 위반이 명확해졌고, EU가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는 확신이 서면 핵합의를 '맞탈퇴'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우는 분위기다.
핵합의에 부정적이었던 이란 보수세력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와 같은 강수를 주문한다.
게다가 이란 핵심 지도부가 미국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미국이 이란에 탄도미사일 개발 포기, 역내 영향력 확산 중단 등과 같이 이란이 받아들일 수 없는 협상 조건을 내건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란핵은 북핵과 달리 지정학적 상황도 사납다.
북핵 문제는 한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이 평화적 해결을 강력히 지지하지만, 이란 주변에는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 수니파 군주국 등 적대적인 국가로 둘러싸여 있다.
이란의 역내 영향력 확산을 극히 경계하는 이들 적대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의혹을 지우고 에너지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 믿을만한 교역 상대국으로 부상하는 시나리오를 극히 우려한다.
이란핵의 '평화로운' 해결을 꺼린다는 것이다.
마크 피츠패트릭 국제전략연구소(IISS) 미국 사무소장은 이달 초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핵과 이란핵의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의 맹방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활동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 이스라엘은 아마 너무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 전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가 북한의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도 결과적으로 빗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는 실효나 내용과 관계없이 전임 정부가 맺은 '최악의 실수'이지만 북한과 협상은 본인의 능력으로 주도한 '최선의 성과'로 간단하게 이분한 때문으로 해석된다.
북핵 문제가 급속히 해결 국면에 접어들면서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목한 '악의 축' 3개국(이란, 북한, 이라크)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게 이란 현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란의 한 정치 평론가는 연합뉴스에 "미국 보수 정권은 내부의 정치적 이유로 항상 외부의 적이 필요하다"면서 "북한이 미국과 오늘 악수하면서 이란이 미국의 모든 공세를 떠안게 됐다"고 우려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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