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전용기 北 임차로 밀착 과시…북미 합의 보증·중재에 주력
日, 납치문제 공동성명에 명시 안돼…"北과 직접 협상 나서겠다"
(상하이·도쿄=연합뉴스) 정주호·최이락 특파원 =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받아쥔 중국과 일본은 향후 한반도 논의구도에서 자국의 '패싱'(배제)을 불식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질서와 구도의 재편 기회가 된 이번 북미 회담 이후의 중국과 일본의 처지는 사뭇 다르다.
'차이나 패싱' 논란 속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행 과정에서 전용기를 빌려줌으로써 역할론을 극대화한 중국은 앞으로 북한을 등에 업고 한반도 비핵화 보증인이자 중재자로서 역할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은 이번 북미 회담 공동성명에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가 포함되지 않은 점에 적잖이 실망하며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힘을 쏟을 방침으로 알려졌다.
납치 문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해 온 현안이었다.
◇ 중국, 북미 합의 구체화 과정서 '보증인·중재자' 역할 모색
먼저 중국은 이번 북미 회담이 성사된 자체를 적극 환영하며 중국이 제시한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로드맵이 실현된 데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북미 회담에 대해 "양국 정상이 마주 앉아 평등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으며 중국은 환영하고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간 북미의 직접 대화로 한반도 정세 논의에서 소외될 뻔했던 중국은 김 위원장의 두차례 방중과 자국 전용기 임대를 통해 북중 밀착을 과시하며 중국 패싱론을 불식하고자 애를 써왔다.
관영 환구시보도 "김 위원장이 중국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간 것은 중국이 북한을 세계로 나오게 하는데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면서 "중국은 북미 회담에 각종 변수가 나타날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남북미 중심으로 이뤄지던 종전 선언 논의에도 중국이 합류해야 한다는 논지를 펴왔다.
중국은 나아가 북미 양국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다소 상징적 의미가 강한 공동성명을 내는데 그침에 따라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역할 확대를 노리고 있다.
중국은 이번 북미 합의가 지속적인 대화와 소통을 이어나가면서 한반도에서 핵무기 폐기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적대적 관계를 선언적으로 종식하는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
청샤오허(成曉河)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교수는 "중국은 포괄적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며 "중국은 남북 모두의 최대 무역동반자로서 북한 체제를 담보하는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중국 또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경제건설이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만큼 이를 적극 지원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 북미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한국 외에 중국을 방문하기로 한 것 또한 미국이 중국의 역할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뤼차오(呂超)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국은 앞으로 북미 양국이 합의한 내용이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보증인이자 중개자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일본, '패싱 현실화'…북한과 직접 협상에 매진할 듯
반면 일본은 북미회담 이후의 한반도 논의 구조에서도 여전히 패싱론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북미 회담에서 일본인 납북 문제가 논의됐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에도 공동성명에는 관련 내용이 빠진 점에 우려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 및 통화를 통해 납치 문제를 북한에 제기해 달라고 강하게 요청해 왔다.
그럼에도 이번 북미회담 공동성명에 단 한줄도 포함되지 않은 점은 이른바 '재팬 패싱'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대내외 여론의 비판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아베 정권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강하게 반발하며 대북 압박을 주도해 온 만큼 올들어 형성된 대화 국면에서 배제되는 '왕따 신세'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관측된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일본에 중요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하고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에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데다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에 대해 전혀 파악이 안된 상태라는 점이 문제다.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일본이 직접 북한과 마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납치문제 논의를 위한 북일정상회담 추진 의사도 분명히 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모든 납치 피해자를 귀국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국제사회와 연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북한이 한국과 중국에 이어 미국과 정상회담에 나선 만큼 이제 일본도 북한과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격동하는 동북아 정세에서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측이 이에 쉽사리 응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과제다.
그동안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만 배제하는 등 거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왔다.
다만 북미간 추가 협상이 진전되면서 북한의 핵 폐기를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논의할 단계에서는 북한으로서도 일본과 대화의 장을 마련할 가능성도 있다.
또 오는 9월 차기 일본 총리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북일 간에 대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만일 사학스캔들 등으로 지지율 정체에 시달리는 아베 총리가 낙마하고 새로운 총리가 선출될 경우엔 그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재집권할 경우에도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 보이는 만큼 북일 간 관계 변화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것이 전반적인 관측이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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