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통화가치 급락·자본유출에 연쇄 디폴트 우려
보호무역·금리인상으로 인한 신흥국 피해 겹쳐 '근린궁핍화 전략' 비판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방아쇠는 당겨졌다.
신흥국이 통화가치 급락과 자본유출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13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두 번째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특히 연준은 견고한 경기회복세를 바탕으로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기존보다 1차례 늘어난 총 4차례로 예상하는 등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것임을 시사했다.
연준의 이런 정책은 신흥국 위기를 더욱 확산시켜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와 글로벌 금융시장의 충격으로 이어지는 '긴축발작'(테이퍼 탠트럼)을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날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1.75∼2.00%로 0.25%포인트 올렸다.
이는 지난 3월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인상이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제로(0∼0.25%) 수준까지 내렸던 금리를 7년만인 2015년 12월 16일 처음 인상한 이래 0.25%p씩 총 7차례에 걸쳐 인상했다.
세계 최대 경제국이자 기축통화 달러를 쥔 미국의 금리가 오르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고위험·고수익을 특징으로 하는 신흥국 채권, 통화 등 자산에서는 글로벌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신흥국들의 부채 부담은 커진다.
연준이 금리 인상을 결정할 만큼 미국의 경제가 호조를 보이는 데 반해 신흥국은 그 회복세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점도 문제다.
미국과 신흥국의 경제 격차가 벌어지고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면 신흥국에서 자본유출은 가속하고 신흥국들 사이에서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한다면 이는 다시 전 세계 경제에 충격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때문에 경제학자들과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잇단 미국의 금리 인상에 2013년의 '긴축발작'(테이퍼 탠트럼), 심지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까지 지적해 왔다.
지난달 카르멘 라인하트 하버드대 교수는 신흥시장이 처한 여건이 2008년 위기나 2013년 긴축발작 때보다 좋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신흥국 통화 위기가 1997년 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를 연상하게 한다고까지 경고했다.
게다가 연준의 금리 인상은 이날 한 차례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사항은 물가와 고용 등 자국 내 경기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를 훌쩍 넘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완전고용'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고용시장도 안정됐다.
이를 바탕으로 삼아 연준은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3월 2.7%에서 2.8%로 올렸고 실업률과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은 3.8%에서 3.6%, 1.9%에서 2.1%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올해 전체 금리 인상 횟수 전망을 총 3회에서 4회로 늘렸다. 탄탄한 경기회복세를 바탕으로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것임을 천명한 셈이다.
하지만 연준의 이런 방침은 신흥국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을 더욱 짙게 만들 공산이 크다.
신흥국들은 미국 보호주의에 따른 무역전쟁, 정국 혼란, 통화가치 급락, 자본유출, 재정적자 확대, 금리 상승에 따른 부채 압박 확대 등 겹겹이 쌓인 악재가 경제에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연초 대비 13일까지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38%, 터키 리라화는 21%, 브라질 헤알화는 12%, 남아프리카 랜드화는 8%, 인도 루피화는 6%가량 가치가 급락했다.
신흥국 위기의 중심이었던 아르헨티나는 자본유출과 페소화 가치 급락을 견디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3년간 500억 달러(53조4천750억 원)를 지원받기로 했다.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등은 환율 방어를 위해 정책금리를 전격 인상했다.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 데이터에 따르면 신흥국 채권 펀드에서는 지난달 31일∼이달 6일까지 19억 달러가 빠져나가며 7주일째 순 유출이 이어졌다.
타이후이 JP모건 자산운용 아시아 수석전략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 국채 금리가 치솟고 달러가 오를 때 아시아는 힘들어지고 신흥시장에 고통이 된다"며 "시장은 올해 하반기 2차례 더, 내년 분기마다 1차례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니 시장은 '이 인상 사이클이 언제 끝나는가'를 얘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금리 인상으로 인해 발생할 신흥국의 통화가치 급락과 자본유출 등의 타격은 최근 미국이 캐나다 등 동맹국에 관세 폭탄을 쏟아부으며 무역전쟁에 돌입한 것과 맞물려 이웃 국가들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근린궁핍화전략'(begger-thy-neighbor)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인도와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재들은 연준의 통화정책으로 신흥국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며 연준에 긴축의 속도를 늦춰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데즈먼드 라크먼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최근 더힐 기고에서 "연준이 불어난 자산규모를 줄이는 과정에 정부가 재정적자를 늘리면 장기 금리를 급격하게 밀어 올리게 된다"며 "이는 전 세계 자산의 가격거품을 꺼뜨리고 고통스러운 부채조정비용을 유발하며 특히 신흥시장 자본유입을 급격히 중단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실상 모든 경제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무역전쟁이 미국과 세계 경제 번영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라며 "왜 지금 정부가 미국을 1930년대의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전략'으로 되돌리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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