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비니 내무 "마크롱 사과 없이는 佛·伊 정상회담도 취소" 으름장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와 몰타의 입항 거부로 지중해를 떠돌다 결국 스페인으로 향하게 된 난민구조선 '아쿠아리우스' 사건을 둘러싸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이탈리아 외무부는 13일 오전(현지시간) 주이탈리아 프랑스 대사를 로마 외무부 청사로 전격 초치했다. 이는 아쿠아리우스의 항만 진입을 불허한 이탈리아를 "냉소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항의하기 위해 취해진 것이다.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프랑스의 발언은 용인할 수 없고, 정당화할 수 없는 것으로 즉각 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난민구조선의 입항 거부 결정을 내린 당사자인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은 프랑스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이날 상원에 출석한 그는 프랑스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다면 오는 15일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의 정상회담 역시 취소돼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양국 정상은 이날 파리에서 만나 난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문제 등 현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살비니 장관은 이어 "(난민에 대한)연대, 인간성, 환영의 정신 등과 관련해서라면 이탈리아는 누구로부터, 어떤 것도 배울 것이 없다"며 "프랑스 정부의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우리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유럽연합(EU)의 난민분산 정책에 기초해 프랑스는 지난 3년 동안 9천816명의 난민을 수용하기로 돼 있었으나, 이 가운데 고작 340명만 받아들였다고 지적하며, "마크롱은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내일 아침 당장 프랑스가 수용하기로 약속한 9천명의 난민을 데려가라"고 촉구했다.
그는 아울러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냉소적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이탈리아 국경에서 여성과 어린이가 포함된 1만249명의 난민의 프랑스 진입을 거부했다"고 말하며 프랑스의 위선을 꼬집었다.
그는 아쿠아리스호를 인도적 차원에서 자국의 발렌시아 항에 전격 입항시키기로 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에게 사의를 표하면서도 "산체스 총리가 계속 (난민에)관대함을 유지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와 별도로 이날 오후 파리에서 열릴 예정이던 양국 경제부 장관 회동도 이탈리아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취소됐다.
이탈리아의 반발이 거세지자 프랑스 외무부는 논평을 내고 갈등 수습에 나섰다.
외무부는 "프랑스는 이탈리아가 느끼는 난민 부담의 무게와 이탈리아의 노력을 잘 알고 있다"며 "프랑스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으며, 유럽 각국 사이의 긴밀한 협의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국제 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와 SOS 메디테라네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난민 구조선 아쿠아리우스는 리비아 근해에서 구조된 난민 629명을 태우고 유럽 대륙으로 향하던 중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남쪽의 섬나라 몰타가 입항을 모두 거부하면서 난처한 처지에 놓였었다. 이 배는 결국 스페인의 수용 결정으로 뱃머리를 서쪽으로 돌려 발렌시아 항으로 향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해군과 해안경비대 함정을 동원, 정원을 초과한 아쿠아리우스 호의 난민들을 이탈리아 배에 옮겨 태운 뒤 발렌시아까지의 항해를 지원하기로 했다.
집권 시 불법 체류 난민 전원을 본국으로 송환하겠다고 천명해온 극우정당 '동맹'의 대표인 살비니 장관은 "바다에서 목숨을 구하는 것은 의무이지만, 이탈리아를 거대한 난민 캠프로 변모시키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라며 이 난민선의 이탈리아 입항을 거부한 채 이 배와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몰타에 난민선 수용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몰타는 배에 타고 있는 난민들이 이탈리아 당국의 지휘 아래 구조된 이상 이들은 이탈리아가 수용해야 한다며 역시 항구를 열지 않았다.
지난 1일 출범한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권이 그동안 천명해 온 강경 난민 정책이 말로만 그치지 않을 것임을 극명히 보여준 이번 사건에 프랑스는 물론 주변국 일부와 국제 난민 구호단체, 유엔 등 국제기구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난민구조선을 수용한 스페인측도 이탈리아 정부에 화살을 날렸다.
돌로레스 델가도 스페인 법무장관은 "이탈리아의 국제인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고, 시모 푸이그 발렌시아 주지사는 "이 문제를 정치적 무기로 삼는 것은 야비한 일이다. 유럽이 좀 더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는 난민들을 바다에서 죽게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탈리아에는 2013년 이래 약 70만 명의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 도착했다. 이 같은 수는 이 기간 유럽으로 향한 전체 난민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것이다.
난민들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이탈리아 국민 사이에 반난민 정서가 널리 퍼졌고, 이는 지난 총선에서 '이탈리아 우선'을 내세운 동맹의 지지율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자양분이 됐다.
13일에도 시칠리아 섬 카타니아 항에는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 900명을 태운 선박이 도착해 난민 행렬이 지속됐다. 이날 도착한 배는 입항이 거부된 NGO가 운영하는 난민구조선 '아쿠아리우스'와는 달리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소속의 선박이다.
이탈리아 새 정부는 난민 구조 NGO들이 아프리카의 난민 밀입국 업자들과 은밀히 내통하고 있다며 이들의 활동은 저지하겠다고 밝힌 반면, 이탈리아 해군과 해안경비대의 난민 구조 활동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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