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처음에는 잘 모른다. 남편과 아내 중 누구 말이 맞는지.
프랑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21일 개봉)는 법정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정법원 판사는 이혼 소송 중인 부부 앙투안과 미리암 앞에서 11살짜리 아들 줄리앙이 쓴 진술서를 대독한다. 부부는 아들의 양육권을 놓고 다투는 중이다.
엄마, 누나와 함께 사는 아들은 아빠를 '그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면접을 거부한다. "저는 엄마가 걱정돼요. 그 사람은 엄마 괴롭히는 것만 일삼으니까요. 영영 안 보면 좋겠어요."
아들과 아내의 진술대로라면 앙투안은 폭력적인 아빠이자 남편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앙투안이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아들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 직장까지 옮긴 평범한 아빠일 뿐이라고 변호한다.
양측의 입장을 냉철하게 청취한 판사는 결국 부자가 2주마다 한 번씩 만나도록 판결한다.
영화는 이 가족의 과거 사연을 구구절절이 묘사하지 않는다. 모자의 불안한 표정과 일상의 소리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사건을 암시할 뿐이다.
격주마다 강제로 아빠 차에 타야 하는 아들은 겁에 질린 채 시선을 창밖으로 고정하고, 아빠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거칠게 운전한다. 두 사람의 표정은 주로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한 가정의 불화를 건조하면서 다소 차가운 시선으로 담아내던 영화는 중반부터 서서히 예측불허로 전개된다. 모자가 이사한 곳을 알아내려는 아빠와 이를 숨기려는 아들의 거짓말과 숨바꼭질이 이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결말로 내달리면서 공포영화로 탈바꿈한다. 앙투안의 민낯과 가정폭력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다가올 공포의 전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는 배경음악은 소거하는 대신 일상의 소리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긴장과 불안감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삐삐 울려대는 안전벨트 경고음, 달그락거리는 열쇠꾸러미 소리, 한밤중 정적을 깨우는 현관 벨 소리 그리고 귀를 찢는 듯한 총소리가 울려 퍼질 때 비로소 공포는 현실이 된다.
위협적일 정도로 덩치가 큰 앙투안과 가냘픈 체구의 모자가 함께 서 있는 모습 역시 한쪽으로 무너진 힘의 균형추를 암시한다.
그런데도 가정폭력의 실체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충격적이다. 서서히 산에 올라가다 깎아지른 암벽 아래로 갑자기 뚝 떨어지는 듯한 전개로, 그 충격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평범한 가정, 바로 이웃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서 체감공포는 더욱 크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제목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오싹해진다. 소년과 열일곱 살 누나의 행동도 그제야 이해가 간다.
30분짜리 단편 '모든 것을 잃기 전에'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자비에 르그랑 감독은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장르의 혼합, 충격요법으로 가정폭력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처음 연기에 도전한 아역배우 토마 지오리아의 불안한 시선도 깊은 잔상을 남긴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미래의 사자상을 동시 수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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