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소설가 조경란이 새 소설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일요일의 철학' 이후 5년 만에 내는 소설집이다.
표제작을 비롯해 '매일 건강과 시', '11월 30일', '오래 이별을 생각함' 등 단편 8편이 실렸다.
작가는 이 소설들에서 서로 아예 몰랐거나 무덤덤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작은 변화를 겪고 조금씩 서로 알아가며 이해하는 과정을 풀어냈다.
"도서관 유리문을 열고 신발을 찾아 신으면서 나는 경아가 시장 왔다가 들러봤다는 말을 어떻게 질문으로 할지 궁금했다. 경아가 질문하면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해버린다는 걸 이제는 그 애도 알 거다. 벤치 뒤 성긴 숲에서 매미 소리가 울렸고 내가 옆에 앉자 경아가 무덤덤한 소리로 물었다." (84쪽,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중)
'언젠가…'는 서른일곱 살 남자인 주인공 '인수'가 남처럼 서먹하게 느꼈던 아버지와 새로 들어온 가사도우미 '경아'와 함께 지내며 서서히 벽을 허물고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인수는 언젠가 아버지로부터 '너는 다른 집에서 왔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인수가 아버지를 진짜 아버지로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부모에 관해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암시된다.
인수는 오랫동안 산 동네 교회에 있는 베이비박스가 자기 출생과 관련돼 있을 거라 짐작한다.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던 인수는 아버지가 먼 친척이라며 데려온 경아에게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인수는 그녀에게 그동안 한 번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모든 문제를 돈봉투로 해결하려는 아버지의 고루한 삶의 방식마저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11월 30일'은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광장에서의 집회가 주요 이미지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등록금이 없어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던 스물일곱살 청년 '훈'은 어머니 심부름으로 문산에 있는 '오미숙'이라는 여자의 양계 농원에 찾아간다. 그러나 거기서 어머니가 받아오라고 한 것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 못하고, 오미숙에게서 훈이 가족의 과거와 죽은 동생에 관한 이야기, 그녀가 닭에 대해 전혀 몰랐다가 조금씩 알아간 과정을 듣는다.
훈이는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그녀가 쥐어준 달걀 두 판을 들고 돌아온다. 오는 길에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로 버스가 우회하는 바람에 도중에 내려 집회 인파에 섞이게 된다. "미래를 위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훈은 얼떨결에 집회가 열리는 광장에서 어렵게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문학평론가 황예인은 "작가는 '어떻게'에 짓눌려 그 한 걸음을 망설이는 이들의 등을 가볍게 떠밀어주는 듯하다. 목적지를 떠올리며 망설이는 대신 그저 걸으라고, 이미 그것만으로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한다고. 목적지를 몰라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속아왔던 과거가 떠내려간다"고 해설했다.
작가는 책 말미에 수록한 '작가의 말'에서 이번 소설집을 이렇게 설명했다.
"소설집 제목을 '모르는 사람들끼리'로 하자는 말이 편집부와 오갔을 만큼 모르는 사람들, 몰랐던 사람들끼리 알아가고 이해하려는 단편들이 모였다. 많은 사건들을 통과하는 동안 인간은 이 땅 위에서 시적으로 거주한다는 횔덜린의 말을 자주 떠올렸다. 어떤 경우에도 삶이 먼저고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소설의 출발도 거기에 있으리라 믿고, 오늘은 오늘의 글을 쓰고 내일은 내일의 글을 쓸 뿐이다. 누군가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과장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고 조용한 빛을 발산시키는 그런 책을 쓸 때까지."
274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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