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몰카 상시점검' 대책 내놨지만 여성들 반응 '싸늘'
"다운받아 보는 사람도 처벌해야…고소 절차도 개선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효석 기자 = '평범한 여성 A씨가 불법촬영(몰카) 피해를 당했다. 네티즌들은 A씨를 '○○녀'라고 부르며 몰카를 공유하고 외모를 품평했다. 경찰서에 가니 남자 경찰이 웃으면서 '우리가 영상을 지워줄 수는 없다. 동영상과 악플은 직접 캡처해 가져오라'고 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힘겹게 고소장을 써갔더니 경찰은 '영상을 보기만 한 사람은 처벌할 수 없다'며 고소 내용을 덜어냈다. 몇 달 뒤, 몰카를 촬영한 전 남친은 성범죄 교육 이수 조건부 기소유예 처리됐다. 최초 유포자는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기소중지됐다. A씨는 '피해자는 있는데 범죄자는 없다'며 고통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6일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만화 '몰래카메라 후에'의 내용이다. 만화가 '카광'이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이 만화는 페이스북에서 '좋아요(공감)' 1만2천여개를 받고 5천회가량 공유됐다.
카광의 만화는 공교롭게도 15일 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경찰청이 '불법촬영 범죄 근절 특별대책'을 발표하기 하루 전에 공개되면서 함께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는 '불법촬영 카메라 합동점검반'을 구성해 전국 공중화장실 5만곳 등 몰카 위험이 큰 구역을 상시점검하고, 불법촬영 공급·유포자 단속 및 수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자회견에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얼마 전 혜화역 시위는 우리 사회 여성들의 상처와 아픔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었다"고 말해, 이번 대책이 사상 최대 여성시위로 기록된 '혜화 시위'에 대한 정부의 응답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혜화 시위 등에서 '불법촬영물 시청자도 함께 처벌할 것'과 '경찰 고소 및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요구해왔는데 이런 내용이 정부 대책에서 빠졌다고 지적한다.
성범죄 피해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적 있는 김모(31·여)씨는 "경찰서에 처음 갈 때만 해도 경찰이 고소장 쓰는 걸 도와주리라 생각했다"면서 "악플 등 피해 사실을 피해 당사자인 내가 일일이 직접 캡처하고 정리해야 하더라"며 몸서리를 쳤다.
현재 경찰 절차상 성범죄 피해자도 폭행이나 사기 등 다른 범죄의 피해자처럼 자신의 피해를 입증할 증거를 직접 수집해 제출해야 한다.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다면 자신이 찍힌 촬영물을 직접 캡처해야 하고, 악플 피해를 받았다면 악플을 일일이 읽어보면서 캡처해야 한다.
경찰서에 가서도 남자 경찰이 몰카나 악플을 들여다보는 수치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런 건 형사처벌이 안 된다'며 피해사실을 줄이는 경찰의 사무적 태도에 상처를 받기 일쑤다.
'합의된 촬영 아니었느냐' 등 모욕적인 질문을 받는 것을 넘어서 '유포자나 악플러는 잘못인지 모르고 그랬을 수 있는데 합의할 생각 없느냐' 등 가해 남성의 입장에서 질문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지난 9일 2만여명 규모로 열린 혜화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경찰 성비를 여성과 남성 9대1로 하라"며 여경 증원을 요구했다.
전날 발표된 정부 특별대책은 이런 여성들의 요구는 무시한 채 기존에 해왔던 '몰카 점검 및 단속' 횟수만 늘리는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현행법상 불법촬영물을 보는 사람은 처벌할 수가 없고, 유포한 사람도 '성폭력 의도가 있었는지'가 입증이 어려워서 성폭력처벌법 대신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가 적용되고 있다"면서 "이는 처벌 수위도 낮고 피해자가 직접 영상이 음란물임을 입증해야 하는 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경찰은 젠더감수성을 실질적으로 재고할 방안을 내야 하며, 입법기관은 불법촬영물에 관한 새로운 법 조항이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아동·청소년 포르노처럼 불법촬영물도 다운받거나 소지하기만 해도 처벌해야 하고, 유통플랫폼을 강하게 규제해야 하며, 피해자를 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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