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서 '베를린 구상' 1주년 행사 참석…"북의 선제조치 설득해야"
"트럼프, 북미합의 뒤집을 경우 국내정치 타격 커 약속 지킬 것"
"북미정상회담서 이면합의 없었을 것"…"개성공단 재개시 노동력 착취 안돼"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북한이 북미협상에서 한 발짝 앞서 나가는 조치를 하도록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남측의 대북 경제지원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전 장관은 이날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지금까지 북한이 핵 실험장과 미사일 발사 시험장 폐쇄 등으로 한발 먼저 나아가면서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를 유도했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과 협의해 조기에 대북 경제지원을 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북한에 영향력을 가져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운신 폭이 커질 수 있다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주독 한국대사관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발표 1주년을 맞아 공동개최한 콘퍼런스 참석차 베를린을 찾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이 구체적이지가 않아 이면 합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온다.
▲ 북한이 이하리 미사일 시험장을 폐쇄하면서 메시지를 보내니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중단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서 이런 식의 상당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텐데 서류로는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별도의 합의서가 있을 경우 이면 합의가 있다고 한다. 이면 합의는 외교에서 상당히 조심스럽다. 서로 사정이 생기면 이면 합의를 이행하기 어렵게 되고, 이 경우 공개한 내용이 아니어서 서로 간에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내부자가 합의 내용을 흘리면 문제가 커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남북대화에선 이면 합의를 하지 않은 것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와 파리기후변화협약,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뒤집은 것 때문에 북한과의 합의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인식도 있는데.
▲ 이란과 리비아 등 미국이 개입한 중동은 북한과 지정학적 위치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북한 뒤에는 중국이라는 군사대국이 있는 반면, 중동은 그렇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 등에 제한적인 공격을 가하는 미국 네오콘의 '코피 전략'도 북한의 배후에 중국이 있는 상황에서 유효하지 않다.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요구한 것은 수험생을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문제를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권국가에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 부시 행정부 시절에 북한의 핵 능력이 떨어졌을 때는 핵·미사일 개발국과는 협상해서는 안 된다는 일방적인 논리가 통했으나, 지금은 북한 핵 실험을 6번 했고 사거리가 1만3천㎞인 탄도미사일을 갖고 있다. CVID의 요구는 비현실적이 되었고, 협상을 통해 보상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뒤집을 경우 국내 정치에서 받을 타격이 이란 핵 합의와 다르다. 이란 핵 합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책이어서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앞으로 북미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우리 정부가 외교적으로 해야 할 일은.
▲ 과거 북핵 6자회담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재발방지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들어온 것이다. 북한도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보상을 할듯하면서 제재를 가했기 때문에 다자간 협의가 어려웠다. 지금은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체제보장을 교환한 약속을 지키도록 주변국들이 감시해야 한다.
특히 북미 양자 간의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한발 나서서 추진하기가 자국 정치 여건상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도 북한이 핵 실험장과 미사일 발사 시험장 폐쇄로 한발 먼저 나가면서 미국의 상응하는 반응을 유도했다. 앞으로도 북한이 한 발짝 앞서 나가도록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 정상회담과 군사회담, 고위급 회담을 통해 정치적 훈수를 둬야 한다. 우리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입장이 되면 북한이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 북한이 먼저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카드로는 무엇이 있다고 보는가.
▲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핵물질 신고,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IAEA 사찰관 상주 등의 조치를 선제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경제적 지원이 쉽지 않을 수 있다.
▲ 미국과 협의해 대북경제지원을 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영향력을 가져야 트럼프 대통령의 운신 폭이 커질 수 있다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 북한과의 경제교류 시 유의점은. 향후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북한 경제를 잠식해 들어가선 안 된다고 사회적 경제를 이루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북한은 유독 남북 간에 경제원칙을 적용시키는 것을 불편해한다. 1998년 북한과 비료 지원 회담을 할 때 우리 측이 '비료 20만t을 줄 테니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했는데, 북측인사가 '광주리에 떡을 담아 보내면 빈 그릇으로 그냥 보낼 사람이 누가 있느냐. 호박이라도 따서 보낼 텐데 처음부터 떡 줄 테니 호박 달라고 하면 되겠느냐'고 항의했다. 이런 점도 고려해야 한다. 개성공단이 재개될 경우 노동의 양과 질에 걸맞은 노임을 주도록 해 일종의 (노동력) 착취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개성공단에서 지급하는 임금이 핵무기 개발에 쓰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겠느냐.
--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는데, 향후 통일부의 기능조정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 일단 남북관계에서 통일부의 전문성을 활용하지 않으면 백전백패다. 북한에는 나름의 화법이 있다. 군사와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통일부와 국정원 등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분석가로서 필요하다.
-- 북한의 인권문제는 '뜨거운 감자'인데, 이 문제로 남남갈등이 일어나는 것도 남북관계 진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 당국 차원에서 인권문제를 꺼내면 주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 네오콘은 긴장조성을 위해 인권문제를 활용한다. 중국도 인권문제가 심각했는데 경제적 생존이 보장되면서 인권문제가 완화됐다. 인권문제는 은근하게 접근해야 한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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