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윤리21·과학이 만드는 민주주의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 = 후지타 쇼조 지음. 윤인로 옮김.
일본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후지타 쇼조(藤田省三·1927∼2003)가 정통과 이단이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분석한 책. 미완성 논고, 저자가 스승인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와 한 토론 원고를 모았다.
저자는 정통과 이단을 권력 투쟁이나 파벌 항쟁으로 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그는 참된 사상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신적 관계가 정치적 관계와 섞일 때 정통과 이단이 문제시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이 사회를 초월하는 일정한 정신적 지점이나 실체로 사회를 상대화하거나 대상화하려는 사상체계는 모두 이단이 된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내놓은 일본 천황제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그는 천황이 신을 모시는 인물일 뿐 신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제(祭)의 대상은 사라지고 제를 지내는 일과 그 일을 행하는 구체적 인격만 윤곽으로 드러난다"는 이유로 천황이 신보다 강한 존재가 됐다고 분석한다.
삼인. 232쪽. 1만5천원.
▲ 수용소 = 어빙 고프먼 지음. 심보선 옮김.
사회구조 대신 정신병원, 군대,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에 주목한 어빙 고프먼(1922∼1982)이 1961년에 쓴 책으로, 미시사회학 분야에서 뛰어난 저작으로 평가된다.
저자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수가 바깥사회와 단절된 채 거주하는 장소인 '총체적 기관'(Total Institution)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를 분석한다.
그는 정신병원이 훈육과 통제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공간이지만, 환자가 억압과 강요에 비밀스럽게 저항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로 인해 환자는 물론 의사와 직원이 모두 왜곡에 기인한 상처를 받는다고 지적한다.
또 정신병원은 엄연히 시장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그러면서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를 보듬지 못하는 보호자와 사회도 시장 수요자라고 꼬집는다.
역자는 총체적 기관을 푸코가 제안한 '파놉티콘'과 비교하면서 "푸코가 권력의 자아 규정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고프먼은 권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자아 감각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고 정리한다.
문학과지성사. 456쪽. 2만5천원.
▲ 윤리21 = 가라타니 고진 지음. 윤인로·조영일 옮김.
'제국의 구조', '헌법의 무의식'을 집필한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1990년대 한일문학심포지엄에서 한 강연 내용을 다듬은 책.
저자가 관심을 둔 주제는 '책임'이다. 그는 자식의 잘못에 부모는 책임이 있는가, 환경오염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일본 천황이 전쟁 책임을 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책임 문제는 결국 윤리에 뿌리를 둔다는 것이 저자 견해다. 그리고 윤리를 선악이나 행복이 아닌 자유라는 관점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없고, 책임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고 단언한다.
다만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자유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도서출판b. 238쪽. 1만8천원.
▲ 과학이 만드는 민주주의 = 해리 콜린스·로버트 에번스 지음. 고현석 옮김.
과학기술과 사회를 주제로 연구 활동을 펼친 영국 학자들이 과학과 민주주의 사이 관계를 논했다.
저자는 20세기 이후 과학사를 세 가지 흐름으로 설명한다. 과학이 예언자이자 진리 판단자로 인식됐던 '제1의 물결', 과학을 불연속적 단절 과정으로 파악한 '제2의 물결', 과학과 사회를 분리할 수 있다고 본 '제3의 물결'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을 '제3의 물결'로 보는 저자는 "과학은 과학적 가치에 존재하는 기대와 열망 때문에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며 "전문적 지식이 아닌 과학의 열망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음. 252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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