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 국편위원장 "정사(正史) 편찬·제공 안할 것"

입력 2018-06-18 06:10  

조광 국편위원장 "정사(正史) 편찬·제공 안할 것"
"사료 수집과 한국사 보급 집중…기관명 교체 여부 검토중"
"3·1 운동은 근대민족주의 출발점, 시위 정보 DB화"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과거에는 새로운 왕조가 이전 왕조에 대한 정사(正史)를 편찬했습니다. 오늘날 역사학에서는 정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과거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니까요. 국사편찬위원회는 앞으로 정사를 편찬하거나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난 15일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관한 질문에 단호한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학생들에게 국가가 정한 정사를 담은 교과서를 제공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조 위원장은 앞서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를 공개한 8일 발표한 사과문에서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할 수 없다는 역사학계 상식에 반한다는 점에서 국정교과서를 '잘못된 정책'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조 위원장은 조선이 고려 정사로 편찬한 '고려사'를 예로 들면서 "고려 후기 우왕이 공민왕이 아닌 신돈의 후손이라고 기록했는데, 이는 이성계가 역적이 아니라는 점에 치중한 결과"라며 "조선 후기인 18세기에도 우왕이 공민왕 자식이라는 서술은 야사에만 등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에 역사교육이 추구해야 할 목적은 민주의식 함양"이라며 "민주주의에서는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한 사고가 필요하고, 역사도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 위원장은 취임 이후 대대적 조직 개편을 하지 않았으나, 교육부 내에서 국사편찬위원회를 담당하는 부서를 교과서정책과에서 학술진흥과로 바꾸도록 했다. 국편이 교과서와 관계없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조 위원장은 국편 편사연구직이 공무원이자 역사학자라는 이중적 속성 탓에 교과서 업무를 거부하지 못했다고 분석한 뒤 "국편이 교과서에 관여하지 않고 본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편 설립 근거가 되는 법은 '사료의 수집·편찬 및 한국사의 보급 등에 관한 법률'이다. 국편은 사료를 모으고 편찬하며 국사 연구 성과를 일반 시민과 공유하는 것이 본연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조 위원장은 "국편 연구직, 역사 관련 기관장, 역사학자들과 만나 혁신안을 담은 발전계획 초안을 수립했다"며 "기관명 교체 여부는 아직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름 때문에 국편이 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곳이라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국립역사원을 비롯한 새로운 기관명을 제안받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간 사용한 국사편찬위원회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서 최종 결정은 신중하게 할 방침입니다."
조 위원장은 사료 수집과 편찬이 역사학자에 초점을 맞춘 업무라면, 한국사 보급은 역사학계의 중요한 추세인 역사 민주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사는 아니더라도 기본적 국사 지식은 국민이 알도록 제도교육과 사회교육을 해야 한다"며 "사료 목록집을 만들고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며, 외국인을 위해 사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교수 시절 조선 후기와 천주교 역사를 주로 연구했지만, 근현대사에도 관심을 보인 조 위원장은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는 3·1 운동이 한국사에서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3·1 운동의 세 가지 특징으로 한국 근대민족주의 출발점, 아시아권에서 반제국주의 평화운동을 촉발한 사건, 공화주의 실천 기점을 꼽았다.
근대민족주의 출발점이란 견해에 대해 "과거에는 혈연, 종교, 언어를 민족 기준으로 봤으나, 지금은 민족에서 의식 공동체를 중시한다"며 "전국 210여 곳에서 시위가 벌어진 3·1 운동은 한국인이 의식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3·1 운동은 중국과 인도에서 일어난 반제국주의 운동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나 기폭제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며 "우리나라가 공화주의에 입각한 국체를 지향하게 된 계기도 3·1 운동이었다"고 덧붙였다.
국편은 3·1 운동을 맞아 내년 2월께 전국에서 발생한 시위 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하고, 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또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나 구술을 채록하는 사업도 벌일 계획이다.
조 위원장은 남북 학술 교류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그는 "역사 인식 면에서 남북이 동질성을 회복하려면 한 세대가 걸릴지도 모른다"며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같은 유관기관과 함께 교류를 추진하되, 국편이 주도해서 차근차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편과 관련된 여러 현안을 설명한 조 위원장은 "역사란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대화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 국가가 나서서 인문학을 장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토대가 되는 인문학은 공기와 같습니다. 평소에는 필요성을 모르지만, 없으면 나라가 흔들립니다. 인문학에 대한 지원을 배가하면 10년 뒤에는 아시아를, 20년 뒤에는 세계를 움직일 담론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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