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케, 중범죄 옛 FARC 지도자 정치참여 제한·처벌 방침
옛 FARC 무장투쟁 복귀 우려…ELN과 향후 협상에도 부정적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보수우파 성향의 이반 두케가 17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대선에서 차기 대권을 거머쥐자 반세기 넘게 계속된 내전의 종식을 이끈 평화협정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두케 당선인은 콜롬비아 정부가 2016년 최대반군인 옛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과 체결한 평화협정에 반대해온 강경우파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이 직접 낙점한 정치적 후계자다.
정부와 옛 FARC는 2016년 9월 평화협정에 서명한 뒤 10월에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찬성 49%, 반대 50%의 근소한 차이로 평화협정이 부결되자 재협상을 벌였고, 11월에 새 평화협정안에 합의했다. 평화협정은 우리베 전 대통령이 끄는 민주중도당 의원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다음 달 의회에서 통과됐다.
두케 당선인은 우리베의 정치적 후계자답게 대선 운동 기간 내내 평화협정이 옛 FARC에 너무 관대한 만큼 수정을 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마약밀매는 물론 살인과 납치 등 반인권 범죄에 연루된 옛 FARC 지도자와 반군 대원들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은 채 정계에 발을 디디고 사회로 복귀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게 두케와 우리베 전 대통령의 주장이다.
두케는 중범죄를 저지른 반군 지도자들과 대원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하고, 특별 전범재판소를 구성해 이들을 처벌한다는 복안이다.
두케와 우리베 전 대통령은 대선 운동을 펼치면서 좌파 후보에게 정권이 넘어간다면 콜롬비아가 또 다른 베네수엘라가 될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정치인들이다.
두케가 약속한 대로 평화협정에 손질을 가한다면 무기를 반납하고 사회에 복귀한 7천여 명의 옛 FARC 대원 중 일부가 반발, 반군 조직을 재정비하고 재무장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일부는 최후 주요반군인 민족해방군(ELN) 등 군소 반군에 합류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콜롬비아 정부와 부활한 반군 세력 간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내전에 버금가는 혼란이 재연될 것으로 우려된다. 평화 정착의 걸음마를 막 뗀 콜롬비아에 내전의 악몽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콜롬비아에서는 1964년 옛 FARC가 결성되면서 시작된 좌파 게릴라 조직과 정부군, 우익 민병대 간의 유혈 충돌로 26만 명이 사망하고 4만5천 명이 실종됐으며 66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무엇보다 옛 FARC가 정치 세력의 하나로 점차 자리를 잡고 있지만, 평화협정 수정으로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옛 FARC는 평화협정 체결 후 지난해 '공동체의 대안 혁명을 위한 힘'(FARC)이라는 정당으로 거듭났다. 평화협정에 따라 상하원 양원에서 각 5석을 배정받은 FARC는 지난 3월 치러진 총선에서 추가 의석 확보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FARC는 보수 성향이 강한 콜롬비아 국민이 반군에 대한 강한 반감 탓에 1%에 못미치는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젊은층과 빈민층을 중심으로 대안 정치 세력으로서 세를 확장하고 있다.
좌파 후보인 구스타보 페트로가 콜롬비아 현대 정치사상 처음으로 대선 결선투표에 오른 것은 바닥 민심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두케의 평화협정 손질은 작년부터 시작된 정부와 ELN과의 평화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콜롬비아 정부는 현재 쿠바에서 ELN과 평화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좀처럼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하고 있다.
두케 당선인이 평화협정 수정을 통해 옛 FARC 반군 일부를 다시 처벌하거나 그들의 운신 폭을 좁힌다면, 기존 평화협정을 뒤집은 두케 정권을 불신하는 ELN이 새 평화협정에 적극 나설 리 만무하다.
여기에 두케가 징역형 수용 등 ELN이 수용하기 힘든 전제 조건을 내걸 경우 향후 평화협상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로사리오 대학의 얀 바스셋 교수는 "두케의 승리는 평화협정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협정의 영향을 최소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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