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신성으로 주목…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두 권의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로 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김금희(39)가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창비)을 내놨다.
작가 특유의 문장에서 빛나는 섬세한 결이 더 풍부한 이야기와 긴 호흡 속에서 부드럽게 일렁인다. 이전 단편들처럼 내면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지닌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픈 공감을 일으키면서 이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서로 마음을 내보이고 보듬는 과정이 어떤 위로를 건넨다.
소설은 반도미싱이라는 회사를 다니는 30대 후반 남자 '공상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그는 잘 우는 남자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교수였고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이기적인 사람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 곁에서 암울한 나날을 보내다 일찍 죽었다. 상수는 어머니의 부재와 독재적인 아버지, 폭력적인 형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상처를 입었고 10대에는 유일한 친구의 죽음까지 겪었다. 그는 사회성이 부족해 회사에서도 거의 '왕따'로 지내는데, 아버지 연줄의 낙하산으로 들어와 쫓겨나지는 않고 어렵게 팀장 보직을 달게 된다.
공상수 밑에 유일한 팀원으로 '박경애'가 들어온다. 경애는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라다 10대 시절 영화에 빠져 하이텔 영화동호회에서 활동했다. 거기서 만난 'E'라는 친구와 마음을 나누다 그 친구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큰 아픔을 안고 살게 됐다. 반도미싱에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뤄지자 파업에 적극 동참했는데, 노조 간부의 성폭력 사건을 폭로해 노조가 와해되면서 사측과 노조 양쪽으로부터 기피 대상이 됐다.
이렇게 다른 배경과 성격을 지닌 상수와 경애는 처음엔 불화하다가 조금씩 서로의 진실한 면을 보게 된다. 이 소설은 흔한 '로맨스' 서사와는 거리가 있지만, 두 사람이 과거의 상처를 내보이고 현재의 삶에서 연대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따뜻한 온도를 만들어낸다.
"처음엔 '찐한' 로맨스가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요. 쓰다보니 그 틀이 두 사람 관계를 좁게 만들 수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경애와 상수는 상처를 치유하는 조력자이자, 노동하는 공간에서의 조력자로서 좀 더 열린 형태의 관계가 맞겠다 싶었죠. 길을 더 열어두는 방식으로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네요."
18일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만난 작가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강렬하고 매력적인 두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둘 다 불화하는 인물이지만, 자기가 최소한으로 지키고 싶은 내면의 룰이 있는 사람들이고, 다만 그걸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서툴 뿐이에요. 저도 사실 그런 편이고, 제가 본 주위의 많은 친구들도 그런 모습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걸 기반으로 썼어요. 그런 사람들이 만나서 조금씩 마음을 내보이는 과정이었으면 싶었죠."
이번 소설은 아무래도 첫 장편이어서 더 어려웠다고 했다.
"쓰는 과정에서 '내가 이게 처음이구나'를 매번 느끼게 됐는데, 이게 과연 완성될지 불안하고 걱정이 컸죠. 계간(창작과비평)에 4회 연재가 끝나고 500매를 더 썼는데, 다 맺은 뒤에도 이게 장편이 된 건가 싶었어요. 편집자가 원고를 받아 읽고 '괜찮고 좋았다'고 얘기해서 그때서야 내가 장편을 썼구나 실감하게 됐죠."
이야기는 3년 전 '미싱'이 '머신'의 일본 발음에서 나왔단 얘기를 우연히 들은 데서 출발했다.
"기계(머신)라고 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인데, 그게 미싱이라니 신기했어요. 오히려 지금은 사양산업으로 분류되는 이 아이러니가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것과 함께 갈 수 있는 이야기로 인천에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렸어요. 제가 평생 인천에서 살았는데, 10대와 20대를 주로 보낸 동인천에서 마음에 남는 비극적인 일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이야기가 두 개로 나아가면 좋겠다, 뭔가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가 말하는 비극적인 사건은 1999년 10월 30일 인천 인현동 한 호프집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다. 인근 학교에서 축제를 마친 뒤 뒤풀이를 하던 학생 등 57명이 숨졌다. 호프집 사장의 불법영업과 이를 묵인한 당국의 구조적인 비리가 얽힌 참사다.
그는 가까운 사람 중 그 참사의 희생자가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 "그 비극을 지켜봤고 그 공간에 오래 있었던 사람으로서, 작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경애의 마음'이란 제목은 어디서 왔을까. 그는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든 경험이 사람들에게 있는 경애(敬愛),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형상화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이 현실이 망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며 모두 살아가고 있는데, 그게 보통의 사람들이 각자 갖고 있는 강력한 힘을 통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부 소수가 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 질서가 유지되는 데는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러려면 서로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고 각자의 마음이 어떠한 형태로 구성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광장에서 촛불을 봤을 때 그 생각이 좀더 강화된 것 같아요. 이렇게 마음을 보여주고 그 뒤에 각자 흩어져 일상의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구나 싶었죠. 이 소설을 왜 쓰고 싶었는지 확실히 몰랐는데, 마지막 문단을 쓰고 보니까 '아, 나는 그 마음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구나' 알게 됐죠."
소설의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상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10월의 어느 깊은 가을날 우리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와의 이별에 관한 회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밤 내내 여러번 반복된 이야기는 오래전 겨울,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라는 경애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같이 울었던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 서로가 서로를 채 인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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