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침전 대문 광명문 이전 기공식
2038년까지 선원전·흥덕전·흥복전 복원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서울 중구 덕수궁 후미진 곳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광명문(光明門)이 자리해 있다. 문은 무릇 사람이나 물자가 드나드는 곳이지만, 광명문은 본디 역할을 잃어버린 채 물시계(자격루)와 종(흥천사명 동종) 전시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일제강점기 내내 덕수궁 전체가 마음대로 쪼개지고 헐리는 가운데 고종의 침전 함녕전(咸寧殿) 남쪽에 있던 광명문 또한 1938년 구석으로 옮겨졌다. 엉뚱한 곳에 머무르는 광명문이 80년 만에 제 자리를 찾는다.
19일 오후 3시 광명문 앞에서는 100여 명의 문화재계 인사가 모인 가운데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공식이 열린다. 문화재청은 2016년 광명문의 원래 자리를 발굴해 광명문과 배치상태, 평면 형태 등이 같은 건물지 1동을 확인했다.
문화재청은 올해 말까지 광명문 이전 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광명문이 품었던 유물들은 우선 보전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국보 제229호인 창경궁 자격루와 신기전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보물 제1460호인 흥천사명동종은 경복궁 궐내각사지의 임시 처리장으로 옮겨진다.
광명문 이전은 문화재청의 야심찬 덕수궁 복원 사업의 첫 단추다.
덕수궁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합병되기까지 13년간 대한제국 정궁으로 기능하면서 현재는 궁 밖에 위치한 중명전과 옛 경기여고 자리까지 광대한 영역을 차지했다. 하지만 대한제국 멸망과 1919년 고종 승하 이래 각종 전각이 철거되거나 다른 곳으로 이관되고 궁궐 영역 또한 계속 쪼그라들었다.
특히 1920년대에는 지금의 덕수궁과 미국대사관 사이에 담장길이 조성되면서 궁궐이 아예 두 곳으로 쪼개졌는가 하면, 선원전 구역은 조선총독 손에 넘어가 조선저축은행 등에 매각되고, 선원전은 헐려서 창덕궁으로 옮겨졌다. 나아가 덕수궁 중심 영역은 공원화 계획에 따라 돈덕전마저 헐려 나가고, 함녕전 정문인 광명문도 강제로 이전되었다.
이에 정부는 덕수궁에 제모습을 찾아주기로 하고, 광명문을 시작으로 2038년까지 3단계에 걸쳐 진전(眞殿)인 선원전(璿源殿), 빈전(殯殿)으로 사용한 흥덕전, 혼전(魂殿)인 흥복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과 부속건물 54동을 필두로 배후 숲인 상림원, 담장인 궁장(宮牆) 등을 복원할 방침이다.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맞아 서양식 연회장으로 지어졌다. 고종이 외국 사신을 접견했던 이곳에서 1907년 순종이 즉위하기도 했다. 순종이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긴 후에는 헐리고 말았다.
문화재청은 "돈덕전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는 지난해 마쳤으며 연내 공사를 시작해 2021년 완공할 예정"이라면서 "복원 작업이 끝나면 대한제국 자료관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왕의 초상 어진을 봉안하던 선원전 일대 또한 복원할 계획이다. 1901년 당시 미국공사관 북쪽에 들어선 선원전은 고종 승하 후 다른 건물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광복 이후에는 경기여고 터로 쓰이다가, 주한미국대사관에 양도됐다. 우리나라에 다시 소유권이 넘어온 것은 2011년이다.
올해는 선원전 발굴조사를 위해 미국대사관에서 사용하던 조선저축은행 사택, 미국대사관 관저 등 건물 9동과 시설물 철거가 먼저 이뤄진다.
선원전 외에도 왕·왕후 시신을 모시는 빈전 흥덕전, 발인 후 종묘로 옮기기 전까지 신주를 모셨던 혼전인 흥복전 등 주요 전각과 부속건물과 상림원 등을 연차로 복원한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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