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화예술계 여성종사자들의 절반 이상이 성희롱ㆍ성폭력 등 성범죄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운영한 '문화예술계 성희롱ㆍ성폭력 특별조사단'이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응답자 2천478명의 57.7%에 해당하는 1천429명이 성희롱ㆍ성폭력을 직접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주로 선배 예술인, 기획자 및 감독(연출, 편집장, 기획위원, 프로듀서 등 상급자), 대학교수ㆍ강사 등으로, 위계에 의한 성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다.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36건을 보면, 대학교수에 의한 학생 성추행, 영화배급사 이사의 직원 성추행, 웹드라마 제작사 간부의 배우 성추행, 유명 가수의 작사가 성폭행, 무용수의 여성동료 신체 부위 도촬 등 형태도 다양하다. 문화예술계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폐쇄적이고 내부 위계질서가 엄격하며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특수한 환경 탓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계 종사자 응답자들은 문화예술계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로 성희롱ㆍ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문화예술계 특유의 분위기와 이에 대한 인식 부족, 피해자의 권익을 대변할 공적 조직 미비를 꼽았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피해를 보아도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가해자가 대부분 권력을 쥐고 있어서 2차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떠나야 할 수도 있다. 실제 1천326명(87.6%)이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는데, 이는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고, 문화예술계 활동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돼서였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 특별조사단은 관계기관과 연계를 통해 피해자 원스톱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전담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정부가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예방교육 강화 등을 위해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12개 법률 가운데 10개가 국회계류 중이다. 성폭력 등 가해자에 대한 처벌 및 행정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형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대책을 마련해서 이행하기 위해 조속한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
예방교육을 철저히 하고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 징계 문제이다. 피해자가 아무리 위험을 무릅쓰고 고발한다 해도 시간이 흘러 가해자들이 업계로 복귀한다면 함께 일해야 하는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법적인 형벌 외에도 가해자들이 해당 업계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제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가해자들이 공적 지원금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공공 예술기관장이나 교수직에 임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별조사단 활동이 종료되면서 100일간의 특별 신고ㆍ상담센터 운영도 끝났다. 신고부터 징계에 이르기까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시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추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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