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병모 "돌봄노동, 공동체라고 나을까요?"

입력 2018-06-19 17:02  

소설가 구병모 "돌봄노동, 공동체라고 나을까요?"
새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소설가 구병모가 새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민음사)을 내놨다.
이 소설은 출산 장려 정책의 하나로 고안된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정부가 경기도 외곽 어느 도시에 빌라 형태 공동주택을 지어 아이가 있는 부부들을 입주시킨 것이다. 입주 조건으로 10년 내에 자녀를 셋 이상 갖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자필 서약서가 요구된다. 이곳에 처음으로 네 쌍 부부가 입주해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공동육아를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 이야기다.
그동안 판타지 청소년소설 '위저드 베이커리'(2008)로 시작해 '아가미', '파과', '한 스푼의 시간' 등 환상성이 강한 소설을 쓴 작가가 현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을 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일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이번 소설이 직접 육아를 하면서 체감하고 고민한 문제들과 상당 부분 이어져 있다고 밝혔다.
"제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각들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2010년쯤부터 돌봄노동이 한 쪽에 많이 기울어지고 전가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 소설에서 써왔는데, 주로 단편이다 보니 부각이 잘 안 되고 묻혔죠. 이 소설은 '돌봄공동체란 게 가능할까'라는 문제를 떠올리고 시작했지만, 직접적으로 집필을 가속한 계기는 과거 정부에서 내놓은 가임기 여성 출산지도 같은 정책들을 보면서예요.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고 내놓는 여러 정책이 있는데, 그런 상태에서 과거의 공동체가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며 겪은 아쉬운 점들을 생각하다 보니 옆에 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떼 지어 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죠."



돌봄공동체의 가능성에 회의적인 이유는 그 공동체마저도 돌봄노동의 쏠림이 이어지는 현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풍경이 그려진다.
"마을공동육아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 있는데, 제가 본 수기 모음 형식의 책에서는 목차가 대부분 '함께하는 엄마', '엄마 교육' 하는 식으로 나와 있었어요. 공동육아라고 해도 결국 누군가 주로 부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한 가정 안에서도 분명히 집중적으로 부담을 지는 사람이 존재하는데, 그 규모가 마을 단위로 커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저출산 대책이 문제의 본질을 비켜나 있고 그 기저에 깔린 관점 자체가 그릇돼 있다면서 무엇보다 인간 존중이란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정책이 많이 나왔지만, 대체로 예산만 쓰고 도움이 안 됐죠. 저는 먼저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람으로 보는 게 선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살아있는 생명을,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가볍게 본 대가를 지금 치르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여성과 어린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장애인들 그 모두를 포함한, 재벌이나 상위 1%를 제외한 나머지를 우습게 보고 간과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죠. 이 흐름을 정책 한두 가지로 멈출 수 없다고 봐요. 이것을 180도 되돌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는 '민중은 개·돼지'라고 말해 공분을 산 어느 고위 공무원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저출산'이란 용어부터 '저출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이라고만 하면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의미가 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저출생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 합니다. 출산율이란 말도 사람을 머릿수로만, 가축 셈하듯이 하는 느낌이 들어서 출생률로 의식적으로 바꿔서 사용하면 좋겠어요."



이 소설은 현실에서 여성이 주로 짊어진 육아, 돌봄노동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소설로 묶일 수도 있어 보인다. 아이가 있는 여성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문장이 많다.
"아무리 제시간에 일어나 보려고 해도, 심지어는 아이가 수십 분째 옆에서 울고 있더라도 눈꺼풀 한쪽 드는 일조차 불가능할 때가 있다. 모성애니 근성과는 아무 상관 없이 굴러가다 때론 난파하고 마는, 기를 써도 본전조차 건지기 어려운 게 보통이며 본질적인 실패를 전제로 깔고서도 이미 벌인 판을 엎지 못하고 재검토 따위도 소용없는, 숨을 쉬는 이상은 그대로 진행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게 육아의 모든 것이다." (24∼25쪽)
"두 아이를 키운 경험에 비추어, 엄마란 자신이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마땅한 존재였다." (28쪽)
그러나 작가는 독자의 자유로운 독해를 기대했다.
"이 소설 속에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 여성들이 굉장히 약점이 많고 단점이 많은 존재에요. 얼핏 보기엔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라 '여자의 적은 여자다'를 증명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라 '인간의 적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에요. 인간은 누구나 결함이 있으니까 인간이라는 거죠. 읽는 분들이 얼마든지 페미니즘 소설로 읽어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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