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독립영화감독 3인이 풀어낸 극장의 의미

입력 2018-06-20 06:01  

젊은 독립영화감독 3인이 풀어낸 극장의 의미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작문 시험시간에 '극장'이라는 제시어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글을 쓸까. 누군가에게 극장은 유년시절의 추억이 살아있는 곳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첫사랑과의 데이트 장소일 수 있다.
반면 누군가에게는 지난 사랑을 묻어버린 곳일 수 있고 간혹 끔찍한 기억이나 두려운 경험을 한 장소일 수도 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2009년부터 재능있는 신인 감독 발굴을 위해 '독립영화 차기작 프로젝트: 인디트라이앵글'이라는 사업을 했다. 하나의 제시어를 주고 이와 관련한 시나리오를 공모해 당선작의 영화화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가 제시한 주제어는 '극장'이다. 이에 유지영·정가영·김태진 등 3인의 젊은 독립영화감독이 나름의 답안을 제출했고, 이들이 연출한 3편 단편 영화가 한 데 묶여 '너와 극장에서'라는 제목의 옴니버스 영화가 탄생했다.
옴니버스 단편 중 첫 번째 작품 '극장 쪽으로'를 연출한 유지영 감독은 극장이 꼭 낭만적인 공간만은 아니라는 데 주목했다.
유 감독은 "극장이 악몽이 되면 어떨까. 미스터리 형식으로 해보자고 마음먹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
지방 공기업의 안내데스크에 근무하는 '선미'(김예은 분)는 반복되는 삶에 권태를 느끼던 중 누군가로부터 '6시 오오극장에서 봐요'라는 쪽지를 받게 된다.
선미는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오오극장으로 향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낯선 만남에 대한 기대는 차츰 짜증과 허탈함으로 변해간다.
두 번째 작품 '극장에서 한 생각'을 연출한 정가영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녹여냈다.
정 감독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럴 때 느낀 충동이 시나리오에 들어가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극 중 '가영'(이태경 분)은 공포 코미디 '극장 살인사건' 연출을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다.
가영은 그간 멜로 영화를 찍었고, 관객과의 대화 때마다 '경험에 바탕을 둔 실화인가'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가영이 "이제 영화가 실화냐는 질문을 안 받게 될 것 같아 좋다"고 한 순간 무례한 관객은 영화와 전혀 관계없는 질문을 공격적으로 쏟아내고 가영의 사생활까지 거론한다.
세 번째 작품 '우리들의 낙원' 김태진 감독은 영화를 보러 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김 감독은 "영화가 극장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러 가는 과정, 만나는 사람, 먹는 음식이 모두 영화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며 "극장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일종의 소동극으로 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은정'(박현영)은 직장 생활에 찌든 중년 여성으로 출납리스트를 갖고 사라진 부하직원 '민철'을 찾아 나선다.
민철이 영화에 죽고 사는 영화 '덕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은정은 민철의 친구로부터 그가 종로의 한 예술극장에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잡으러 종로 바닥을 헤맨다.
세 감독은 모두 예술영화극장을 무대로 삼았다. '극장 쪽으로'의 무대인 '오오극장'은 2015년 개관한 대구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이다.
'극장에서 한 생각'에서 가영이 관객과의 대화에 나서는 곳은 압구정동 가로수길 예술영화관 '이봄씨어터'고, '우리들의 낙원'에서 은정이 민철을 찾아 도착한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울 유일의 민간 시네마테크전용관이다.
감독들은 본인 삶의 터전이기도 한 극장을 무대로 삼아 관객에게 '당신에게 극장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2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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