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고민하다가 뒤늦게 신고…경찰, 트라우마 고위험군 분류 보호 조치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직장인 A(28·여)씨의 일상은 퇴근 후 '노래방 도우미'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면서 송두리째 무너졌다.
A씨는 지난해 6월 '고수익 알바'의 유혹에 빠져 퇴근 후 노래방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거리에서 만난 낯선 남자 이모(50)씨가 시급 3만원을 제안했다.
최저생계비 수준 월급으로 할머니까지 보살펴온 A씨는 한 시간만 일해도 일당의 절반가량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시급 3만원 가운데 2만원을 이씨가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갔다.
A씨는 몇 개월 뒤 노래방 도우미 일을 그만두겠다고 이씨에게 통보했다.
이후 협박이 시작됐다.
그는 A씨의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집 주소와 직장 위치까지 알고 있었다.
시달리다 못한 A씨는 노래방 도우미 일을 이어갔다. '벌금' 명목으로 300만원까지 빼앗겼다.
A씨는 도우미 일을 한 지 1년이 된 이달 초 다시 한 번 이씨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번에는 1천만원을 내놓으라는 으름장이 돌아왔다.
A씨가 요구에 응하지 않자 이씨는 직장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숨기고 싶었던 비밀을 직장 동료들이 알게 됐다.
A씨는 옷가지 몇 벌만 싸들고 친한 언니의 집에 몸을 숨겼다.
시골에 따로 사는 부모에게도 이 일이 알려질까 봐 두려워한 A씨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뒤늦게 경찰서를 찾아갔다.
형사들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A씨가 범죄피해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검사를 받도록 안내했다.
사람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A씨는 아늑하고 편안하다고 느끼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스마트폰으로 설문 항목에 답변을 표시해 경찰관에게 전송했다.
검사 결과 A씨의 심리·생리적 반응은 즉각적인 치유와 보호가 필요한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이 사건을 맡은 광주 서부경찰서는 이씨를 공갈 혐의로 입건하고 A씨 심리치료 등 보호 절차에 착수했다.
임시 숙소를 마련하는 한편 이씨가 더는 A씨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광주 서부경찰은 지난 4월 트라우마 측정 검사를 도입하고 나서 12명의 범죄 피해자를 상담했다.
상담에 응한 피해자 모두 데이트 폭력을 당했거나 A씨처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 힘든 고민을 지닌 여성이었다.
광주 서부경찰서 청문감사관실 피해자 전담 경찰관은 21일 "제때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이 최선이나 저마다 처지 때문에 고민을 안고 있다면 트라우마 측정 검사라도 먼저 받아보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범죄피해 트라우마 검사는 일선 경찰서 담당자와 통화 후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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