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힙합과 아날로그 감성은 의외로 잘 맞아떨어졌다. 랩으로 속내와 분노를 풀어내는 청년부터 인생의 퇴장을 준비하는 부모 세대까지, 영화는 다양한 연령층을 폭넓게 아우른다. 큰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소소하나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에피소드들이 라임이 딱딱 맞는 랩처럼 감정을 조였다 풀었다 한다. 웃음 타율도 높은 편이다. 가끔 객석이 들썩일 정도로 웃음이 터진다.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이준익 감독 신작 '변산' 이야기다. '동주' '박열' 등 한동안 역사 속 청년들의 삶을 스크린에 소환한 감독은 이번에 동시대 청춘들에 눈을 돌렸다. 북적북적한 서울이 아니라 변산반도가 있는 전북 부안이 배경이다. 서울을 떠나 잠시 고향에 내려온 청년이 여러 인물과 마주치면서 잊고 싶은 과거를 떠올리고, 고향의 온정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다. 고향이 어디든지 간에, 각박한 현실을 잠시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위로와 활력을 주는 영화다.
서울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고시원에 사는 학수(박정민 분). 홍대 앞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래퍼지만, TV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는 6년 연속 도전했다가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가장 힘든 시기, 고향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려져 병원에 입원했단다. 학수는 어머니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10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살았다. 고심 끝에 고향에 내려간 학수는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고, 한동안 발이 묶인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장항선), 학수를 짝사랑했던 동창 선미(김고은), 어린 시절 학수의 '밥'이었지만 지금은 체구가 역전돼 건달이 된 용대(고준), 첫사랑 미경(신현빈), 학수의 시를 몰래 훔쳐 등단한 교생 원준(김준한)까지. 학수가 고향에서 마주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학수가 애써 잊으려 한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는 고향에서 늘 상처만 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누군가에게 많은 상처를 줬음을 알게 된다.
솔직하지만 서툰 청춘들의 모습은 유쾌하나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학수가 아버지, 친구와 화해하는 과정이나 스테레오타입의 일부 캐릭터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촌스러움보다는 영화 전반에 스며있는 따뜻한 온기와 유머 쪽에 더 마음이 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중간에 배경음악으로 랩을 삽입해 리듬감 있게 전개하는 것도 영화의 미덕이다.
말맛이 살아있는 차진 대사와 학수의 심경을 담은 랩 가사들은 귀와 가슴에 쏙쏙 박힌다. 잔머리를 써서 학수를 고향으로 불러들인 선미는 자기 아픔에 취해 남의 아픔을 전혀 보지 못하는 학수에게 가끔 '돌직구'를 던지는데, 제법 새겨들을 만하다. 소녀다운 순수함과 어른스러움을 동시에 간직한 선미는 반전 매력을 내뿜으며 학수의 마음을 서서히 흔든다. 다양한 조연 캐릭터들도 극을 풍성하게 한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천재 피아니스트를 연기한 박정민은 학수 역을 맡아 제법 수준 높은 랩과 전라도 사투리를 소화해냈다. 학수의 심경을 담아내기 위해 직접 가사도 썼다고 한다. 이준익 감독은 "박정민 배우의 매력의 끝은 어딘지 모르겠다"며 극찬했다.
김고은은 평범한 고향 처녀처럼 보이기 위해 살을 8㎏이나 찌웠다. 유머 상당 부분도 그가 담당한다.
초반 '쇼미더머니' 오디션 장면은 실제 촬영 현장에서 찍은 것처럼 현장감이 느껴진다. 사실은 세트를 지어 재현했고, 촬영을 위해 도끼, 던밀스, 더 콰이엇, 매드클라운 등 유명 래퍼들을 섭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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