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3차방중 전후로 북미 후속협상 진척속도 예상보다 느려
CNN "중국이 키플레이어 지위 굳혀"…무역전쟁으로 김정은 운신 폭 커져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 방중을 전후로 북한과 미국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는 6·12 북미정상회담의 여세를 몰아 속도감 있는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으나, 이번 주 들어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새이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후속 협상의 '키맨'으로 낙점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재방북 가능성을 시사했음에도 북한 측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게 대표적이다. 북한은 아직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가 누구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슈퍼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 시점에서 재등장한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볼턴 보좌관은 20일(현지시간) 방영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길게 늘어지고 지연되는 회담은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도 진지하다면 마찬가지로 빨리 움직이길 원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 북한이 후속 협상에 신속하게 임할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이런 기류의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는 외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이자 최대 경제 후원자인 중국이 '포스트 6·12' 국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정상간 '의기투합'으로까지 이어진 북미 양국의 후속대화가 둔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 CNN 방송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김 위원장의 이번 만남을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평가하면서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통해 중국이 여전히 북핵 문제의 '키플레이어'라는 사실이 굳어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관계정상화라는 '프로세스'를 거치며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만들려는 워싱턴의 심경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게 외교소식통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주목할 점은 공교롭게도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시점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유례 없는 무역전쟁이 또다시 불거진 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국과의 고질적 무역적자 폭을 줄여보겠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에 굴복하지 않고 경제적 이익을 지키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강(强) 대 강(强)' 대응이 빚어낸 결과이다.
그러나 그 기저에 들어가보면 북핵문제와의 함수관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역전쟁과 북핵은 기본적으로 별개의 이슈이지만, 미·중 두 나라의 경제 이익과 안보 이익을 대변하는 핵심 현안이라는 점에서 양국 정상으로서는 두 가지를 연계해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물론 북미정상회담에 이르는 전반적 대화국면에서 미국과 중국이 전례없는 협력적 관계를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때 북한이 강경태도로 돌변하자 '시진핑 배후론'을 제기하며 중국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G2(주요 2개국)의 전략적 공조가 없었다면 북미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논의로 한반도 질서재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셈법이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와 '경제'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둬야할 처지다. 최대 외교적 업적으로 내세운 북미정상회담의 후속성과, 즉시 비핵화 이행을 순조롭게 끌어내려면 제재의 키를 쥔 중국의 협력이 긴요할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중국과의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는 것 역시 미국 중서부 제조업벨트에 지지기반을 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요한 과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과도한 '관세폭탄'을 던지고 있는 것은 북핵과 무역 양쪽 면에서 성과를 이끌어내려는 '두마리 토끼' 잡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협력의 열쇠를 쥔 중국을 오히려 자극하는 모순된 행동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이 무역압박을 과도하게 가할 경우 대북 협력을 재고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에 북중 정상이 연출한 화기애애한 모습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조치가 북한과의 평화라는 그의 가장 야심 찬 외교정책 목표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시 주석이 보낸 경고 메시지라고 판단한다고 CNN이 보도했다.
대북 협상 경험이 풍부한 빌 리처드슨 전 에너지부 장관"중국이 트럼프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무역 관세를 부과하고 북한에 대한 협력을 원하느냐? 둘 다 가질 수는 없다'라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중국이 무역전쟁의 대응 카드로 예전처럼 자국 기업들의 대북 밀수 등을 눈감아줌으로써 대북제재망을 이완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크다.
민타로 오바 전 국무부 한일담당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전쟁의 강도를 올린다면 중국은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에 덜 협조하고 싶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다시 미중간 무역전쟁으로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미중 사이의 균열을 활용하고 중국으로부터 실질적 대북제재 완화 조치를 유도할 수 있다면 미국의 페이스에 끌려다니지 않고 후속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개선과 경제협력은 대미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최상의 지렛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리처드슨 전 장관은 "김정은이 비핵화 조치를 늦춰서 자신의 페이스로 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고, 오바 전 담당관도 "김 위원장의 논리는 간단하다. 옵션이 많을수록 지렛대도 많아진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아직은 포스트 6·12 국면에 진입한 북미관계의 '온도'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이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절차에 착수하고 서해 위성시험발사장 폐쇄 조치에 나서는 등 북미정상회담 논의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관계가 여전히 긍정적 궤도에 올라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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