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프로그램 '판결의 온도' 합류…"수십장 판결문 공부 매진"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쓰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암묵적인 '금기' 같았던 여성 아나운서의 안경 착용이 이슈가 된 지도 2개월이 흘렀다.
화제의 주인공 임현주(33) MBC 아나운서를 최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아침 뉴스에서 선보인 동그란 안경을 쓰고 나타난 그는 "이제는 저 자신도, 시청자분들도 익숙해진 것 같다"며 "안경을 쓰지 않은 날 오히려 '무슨 일 있느냐'는 메시지를 받는다"고 웃었다.
임현주 아나운서는 오랫동안 안경 착용에 대해 생각하고, 고르고 또 고른 안경을 산 후에도 몇 주간 아나운서실 캐비닛에 넣어놓고 고민했을 정도로 숙고했지만, 이 정도의 반향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뒤늦게 털어놨다.
"아침 뉴스를 하면 수면 시간이 5시간 정도밖에 안 되는데 거기다 화장까지 하니 눈이 너무 피곤해서 해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첫날부터 기사가 나고, 전화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심지어 프랑스 르 몽드 같은 해외 언론에서도 제 기사가 나왔다고 주변에서 알려주더라고요. 이전까지는 앵커로서 대부분의 시간과 고민을 정확하고 신뢰감 있는 뉴스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비언어적인 부분도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는 안경을 쓴 것이 마치 '넛지'(nudge)처럼 자신을 많이 변화시켰다고 했다.
"예전에는 옷 하나를 입어도 그 옷에 제 몸을 맞췄어요. 그런데 안경을 쓰면서부터는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생각도 자유로워졌고요. 아름다움, 앵커다움은 하나가 아니잖아요. 개성을 살리는 데는 주관과 자신감이 필요하죠. 예전엔 의문이 들어도 지나쳤다면 안경을 쓴 후엔 모든 문제를 외면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면서 주관과 자신감도 생겼어요. 안경은 그렇게 제게 '나만의 앵커다움'을 찾는 계기가 돼주었습니다. 안경을 쓴 후 다른 세상이 보였죠."
임현주 아나운서는 안경 착용이 보도된 후 페미니즘 이슈가 상륙, 다시금 '안경'이 회자한 데 대해서는 다소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큰 틀에서 보면 제 안경 착용 역시 요즘 말하는 '탈코르셋'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출발점은 조금 다르다"며 “저는 꾸미기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선택의 중심을 제게 두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안경은 썼는데 왜 네일아트는 했니' 이런 반응도 있더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와 별개로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불평등은 분명 존재한다"며 "그리고 남성도 그만큼 억눌린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함께 변화시켜 나가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렇게 이슈화되면서 하나하나 개선될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현주 아나운서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 언론계에서 찾기 어려운 '이과생'이다. 그래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학업보다는 노는 데 열중했어요. (웃음) 그런데 꼭 한 가지, 손정은 선배가 진행한 MBC 아침뉴스는 꼭 챙겨 봤죠. 로망인 동시에 저도 해보고 싶었어요. 마치 '점지'를 받은 것처럼 자신감 있게 준비했는데 많이 떨어졌죠. 부산에 연고가 없는데도 자취방을 구해 KNN에 좀 다녔고, 이후에도 수없이 많이 떨어졌다가 JTBC 개국 때 입사했고, 2013년에 가장 오고 싶던 MBC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입사하고 5년간 회사가 (파업 등으로) 너무 힘들었죠. 그래도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 방송과 동료의 소중함을 알아요. 그러고 보니, 경력은 거의 10년 됐지만 본격적으로 방송하기 시작한 건 최근이네요. 행복합니다. (웃음)"
그는 또 정상화 작업에 들어간 MBC가 아직 완전한 본궤도에 진입하지는 못한 데 대해서는 "미디어 환경도 변했고, 구성원들이 활동성과 감을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며 "다만 내부에서는 정말 열심히 하고, 사소한 것 하나도 더 주의하고, 대화도 많이 한다"고 강조했다.
임 아나운서는 뉴스를 제외하고 시사교양 프로그램 '아침발전소'를 진행하며 '판결의 온도'에서도 패널로 활약 중이다.
그는 특히 새로 시작한 '판결의 온도'에 대해 "공부가 정말 많이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며 "이미 3심까지 끝난 판결을 '4심' 개념으로 되짚어보는 포맷인데, 한 사건에 수십 장 되는 판결문을 일일이 읽고 생각을 정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1회에서 다루는 고(故) 신해철 씨 의료사고 건도 그렇고 과거 제가 뉴스에서 보도한 사건도 많다"며 "시청자들께서도 '대체 왜 법원은 이런 판결을 했을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기분으로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아나운서는 마지막으로 아나운서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이미지만으로 승부하는 것은 (효과가) 짧을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내공이 있어야 한다"며 "저는 매일 1시간씩 글을 쓰는 방법을 택했다. 일기든, 뉴스 보도하면서 느낀 점이든 많은 것을 기록한다. 지망생분들도 생각하는 연습을 많이 하시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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