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와 안아줘' 허준호 vs. '무법변호사' 이혜영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12명을 이유도 없이 죽이고도 뉘우치기는커녕 교도소에서 자서전을 내는 사이코패스와, 남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탐욕의 여왕.
섬뜩하기로는 위아래를 가릴 수 없는 두 악인이 각각 평일 밤과 주말 밤에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는다.
MBC TV 수목극 '이리와 안아줘'의 살인마 윤희재는 그야말로 사이코패스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인간이란 그런 거야. 이유는 없어. 그냥 휘두르고 싶은 대로 사는 거야. 미친 세상이잖아. 화풀이는 하고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그의 인생관에서 볼 수 있듯 윤희재는 병적인 거짓말로 상대를 통제하고 후회나 죄책감, 타인에 대한 공감 등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
자신과 매우 닮은 장남 현무(김경남 분)에게는 박하게 굴고, 자신과 정반대로 유순하고 똑똑한 나무(도진, 장기용)를 편애하는 것 역시 앞뒤 안 맞는 사이코패스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이미 여러 작품에서 섬뜩한 악인 연기를 능숙하게 소화한 허준호(54)는 이번 작품에서 어느 때보다도 시청자 간담을 서늘케 한다.
신예 장기용과 진기주가 애절한 로맨스 라인을 그린다면, 허준호는 화면에 한 번씩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장르극에 더 가깝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한 치 흔들림 없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악을 행하는 윤희재 모습에 밤 10시 본 방송을 보지 못하고 다시보기를 선택하는 시청자가 적지 않을 정도다.
늘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여유를 부린 그가 박희영(김서형) 기자의 계속되는 도발에 결국 '돌변', 교도관의 목을 딱 죽기 직전까지만 조르는 모습은 흡사 공포영화를 보는 듯했다.
이렇듯 작은 얼굴 근육부터 목소리 톤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내공을 지닌 허준호는 신예들만이 나섰을 때 자칫 발생할 수 있는 공백을 꽉 채우고 극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허준호 소속사 제이스타즈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23일 "역할의 무게감이 큰 만큼, 허준호가 겸손한 자세로 충실하게 작품에 임하고 있다"며 "주로 밤에 활동하고 실내에 있는 장면이 많은 캐릭터이다 보니 최대한 햇빛을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등 외적인 부분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촬영 외에는 외부 활동을 잘 하지 않을 정도로 작품과 캐릭터에 깊이 몰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tvN '무법변호사' 속 기성지법 판사 차문숙은 윤희재와는 다르지만 또 다른 의미의 사이코패스이다.
남들이 가진 모든 걸 빼앗아야 하는 꼬인 본능에, 그 본능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추진력(?)과 매번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영리함까지 갖췄으니 '완전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인자한 얼굴로 법조계 안팎의 존경을 받으며 '기성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니 더욱 섬뜩하다. 특히 존경받는 아버지 차병호의 동상을 보며 늘 자신의 욕망을 되새기는 장면은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봉상필(이준기)을 불러들인 게 차문숙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또 한 번 반전을 불렀다. 수십 년 자신을 도운 안오주(최민수)가 몸집이 커지자 그를 손 하나 안 대고 제거하기 위해 봉상필이 자신에게 칼을 꽂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승부수를 둔 것이다.
배우 이혜영은 이렇게 이중적인 차문숙을 실제 있는 인물처럼 100% 구현한다.
그는 전작 '마더'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자식들에게 한없이 주고자 하는 엄마 차영신을 절절하게 그려내 호평받자마자 차기작으로 180도 다른 모습의 차문숙을 선택했고, 역시 완벽하게 해냈다.
대중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재판관인 양 미소를 짓다가도, 자기 위에 올라서려는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실제로 무릎까지 꿇리며 '너는 개'라고 확인하는 차문숙은 이혜영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됐다.
앞서 이혜영은 "'마더' 캐릭터에서 (너무 몰입해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데 차문숙이라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무법변호사' 관계자는 "현장에서도 최민수와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서로 힘을 많이 얻는 것 같다"며 "두 사람 다 디테일한 표정 연기와 카리스마가 대단해서 악역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워낙 노련하신 분들이라 마음껏 발산하는데, 그게 이준기, 서예지와 이질감이 들지 않는 것도 대단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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