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2세…영욕의 2인자, 파란만장한 한국정치사 그 자체
"기력 다할 때까지 기억 뚜렷"…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안용수 기자 =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로 불려온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8시 15분께 별세했다"고 밝혔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119 구급대에 의해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김 전 총리는 노환으로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총리의 측근은 "한 달 전쯤부터 기력이 떨어졌지만 특별한 병환은 없었다"면서 "빈소가 차려지면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하고 조화나 조의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측근은 또 "생전에 국립묘지에 가지 않고 검소하게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가 묻혀 있는 고향의 가족묘원에 묻어달라는 말씀이 있었다"면서 "이미 언론 보도가 나왔으니 부고도 따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게 지난 21일인데 기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기억력 하나는 그대로였다"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면 오히려 저희보다 기억하는 연도나 순서가 정확했다"고 전했다.
빈소는 평소 진료를 받았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김 전 총리가 작고함으로써 3김 시대, 3김 정치의 주인공이었던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지난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지난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3김 시대의 한 축인 김 전 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같은 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줄곧 영원한 '2인자의 길'을 걸어왔다.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19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난 데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
이후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6개월 간 국무총리를 지내며 승승장구했으나,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7년 13대 대선에 출마해다가 낙선했다. 그러나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 오뚝이처럼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이어 내각제를 고리로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YS)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했으며,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김대중(DJ)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내각제 파동과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 수장 사이의 앙금은 결국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 및 공조 파기로 이어졌다. 김 전 총리는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자신의 10선 도전 실패와 함께 고작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참패를 당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그에 따라붙는 여러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영욕과 부침을 거듭해왔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예리씨 1남1녀가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27일 수요일 오전 8시 영결식을 개최하고, 9시에 발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종필 전 총리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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