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미인' 리뷰…신중현 "내 곡 새롭게 느껴져…감명 깊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기타리스트 신중현(80)의 음악은 뮤지컬에서도 생명력이 넘실댔다. 한국적 맛과 세련미가 물씬 풍기는 그의 음악은 작곡 당시인 1970~1980년을 뛰어넘어 뮤지컬 배경인 1930년대 일제강점기, 뮤지컬이 공연되는 2018년 현재까지를 모두 포용했다. 그의 '한국 록'은 약 한 세기를 관통해내며 시대를 초월한 명곡임을 입증했다.
지난 15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인'은 신중현의 명곡 23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로 시작하는 명곡 '미인'부터 여러 가수의 리메이크로 국민가요로 등극한 '아름다운 강산', 서정적이지만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음이 인상적인 '봄비', 유쾌한 리듬과 가사의 '커피 한잔', 세련된 멜로디와 독특한 분위기의 '리듬 속에 그 춤을' 등이 뮤지컬 무대에 걸맞은 풍성하고 다양한 사운드로 편곡됐다.
신중현 음악을 즐기던 옛 세대부터 그의 이름만을 들어본 젊은 세대까지 모두 호응할 만했다.
'미인'의 그 유명한 기타 리프가 울려 퍼질 때는 객석 전체가 들썩거리고, '리듬 속에 그 춤을'의 오묘한 분위기는 오늘날에도 눈과 귀를 잡아끌었다.
신중현 노래들을 주된 재료로 하지만, 배경을 노래들이 탄생한 1970~1980년대가 아닌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설정한 점이 독특하다. 신중현이란 실존 인물을 그리지 않으면서도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자유와 낭만, 시대정신을 살리기 위해 선택된 배경인 듯하다.
어두운 시대와 상관없이 자유로운 음악을 꿈꾸는 무성영화관 '하륜관' 최고 인기 변사 '강호', 그의 형이자 조국 독립을 꿈꾸는 인텔리 '강산', 강산·강호 형제를 든든히 지키는 종로 주먹패 대장 '두치', 시대를 고뇌하는 신여성 '병연' 등이 중심인물이다.
기존 유명 곡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보니 이야기의 흡인력은 약한 편이다.
강호가 병연에게 반하는 과정, 강산과 두치의 우정, 강산과 일본인 형사 '마사오'와의 대립 등 주요 인물 관계가 성글다 보니 이야기는 군데군데 삐걱거린다.
'빗속의 여인'을 부르기 위해 갑자기 무대 위에서 비가 내리고, '꽁초'를 부르기 위해 담배를 무는 식의 설정도 다소 억지스러웠다.
그래도 신중현에 대한 존경과 경의로 똘똘 뭉친 창작진 노고는 이곳저곳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노래와 서사가 꼭 들어 맞지 않아도, 노래 분위기와 이야기 분위기를 맞추고 사랑 이야기를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치환하는 방식 등으로 극을 끌어나간다.
펄시스터즈를 연상케 하는 '후랏빠 시스터즈'의 춤과 노래, 복고가 아닌 스윙 재즈의 세련된 안무, 경성시대의 모던보이·모던걸들의 의상도 볼거리를 더한다.
무엇보다 일제의 협박에도 불구, '아름다운 강산'을 목이 터져라 부르는 주인공 강호의 모습은 뮤지컬 제목대로 '미인', 즉 아름다운 사람으로 객석에 감동을 준다.
이런 강호는 전성기에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유신정권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신중현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신중현은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 대신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아름다운 강산'을 발표했다.
지난 22일 이 뮤지컬을 직접 관람한 신중현은 "한마디로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감명 깊다"며 "내 곡이 새롭게 느껴진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는 "처음에는 무성영화 시대를 배경으로 해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다양한 연출을 펼치기 위한 것이었다"며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흥분 상태로 끌고 간다"는 평을 남겼다.
공연은 7월 22일까지 이어진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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