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발물관, 대치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보고서 발간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사교육의 1번지' 대치동. 이곳에는 언제부터 학원들이 모여들었을까.
대치동이 사교육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휘문고, 숙명여고 등 강남 명문 중·고등학교가 즐비한 대치동의 교육 열기,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운동권 학생들과 전교조 출신 고학력자들의 학원가 대거 유입, 1992년 학원 수강 금지 해제, 1994년 수능제도 도입이 어우러지면서 대치동 학원가는 급성장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17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대치동 사교육 일번지'를 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도시센터와 공동으로 진행한 대치동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이다.
'대치동 학원가'의 신호탄이 된 것은 정상어학원(1986년)이며, 이어 강남대일학원(1993년), 메가스터디(2000년)가 설립돼 2014년 기준 대치동에는 1천56개(사업체자료 기준)의 학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치동에는 40대 부모-10대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주로 살고 있으며 1998년부터 2016년까지 18년간 이러한 현상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전출입을 봐도 40대 인구전입이 가장 많고, 입시를 마감한 20대 인구전출이 가능 많다. 2017년 대치초등학교 5학년의 한 반을 조사한 결과, 26명의 학생 중 15명이 지방, 외국, 인근 지역에서 전학 온 아이들이었다.
대치동은 '대전세대'라는 말도 낳았다.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대치동에 전세로 머무는 가구를 지칭한다. 실례로 은마아파트는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세가로 인해 전체 가구수 중 전세비율이 60~70% 될 정도로 높다.
또 "은마에서 자식 자랑말고, 미도에서 돈 자랑말고, 선경에서 권력 자랑 말라"는 말은 대치동에 상당한 학력과 재력, 직업을 지닌 이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보고서는 대치동 사교육의 생산과 소비시스템, 학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치동 학생들의 일상적 모습, 그런 자녀들을 뒷바라지하는 학부모들의 모습도 담아냈다.
이와 함께 마을 초입 530년 된 은행나무로 대표되는 한티마을도 소개한다. '대치'의 한글말인 '한티'는 큰 언덕을 뜻한다. 은마아파트와 휘문고등학교 사이 언덕, '대치동 구마을'로 불리는 한티마을은 은마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농사를 짓는 96호 105세대가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7월 초하루면 은행나무 제례 행사가 열렸는데, 2016년부터 '한티골 은행나무 문화축제'로 발전해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개최되고 있다.
'2017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사교육1번지 대치동'은 서울책방(☎02-739-7033)과 서울역사박물관(☎02-724-0272) 뮤지엄숍에서 구할 수 있다.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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