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서 래퍼 변신 박정민 "힘든 무명시절 떠올리며 연기"

입력 2018-06-25 16:09  

'변산'서 래퍼 변신 박정민 "힘든 무명시절 떠올리며 연기"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배우 박정민(31)은 작품마다 카멜레온처럼 모습을 바꾼다. 지난 1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니스트를 연기한 그가 이번에는 래퍼로 돌아왔다.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변산'에서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6년째 TV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도전하는 30대 초반 학수 역이다. 25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민은 학수와 자신의 모습이 겹친다고 했다.
"저도 20대 때 배우가 되려고 연기 공부를 열심히 했죠. 하지만 10년 가까이 배우 일을 하면서 별 성과가 없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다른 일을 해볼까 생각해봤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죠. 학수 역시 래퍼가 되려고 열심히 음악을 만들었을 거예요. 20대 청춘을 모두 쏟아부었기에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거죠."

극 중 학수는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고 10년 만에 고향 변산에 내려가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에 휘말린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내와 자식을 등졌던 아버지에 대한 학수의 오랜 원망이 자리 잡고 있다. 학수는 아버지의 병세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에도 곧바로 고향을 떠나지 못한다.
"학수는 자기가 구질구질한 삶을 살게 된 원흉이 아버지와 고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다시 떳떳하게 랩을 하려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응어리들을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학수는 자신의 심경을 랩으로 표현한다. 일종의 고해성사 같은 것이다. 박정민은 그런 학수를 생각하며 오랜 시간을 들여 직접 가사를 썼다. 초반에 호전적이고 세상을 향한 불만으로 가득하던 랩은 후반으로 갈수록 솔직한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피아노는 제 실력을 뻥 튀겨서 영화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지만, 랩은 오로지 제 목소리로 들려줘야 했어요. 기계음에 의존할 수도 없었죠. 제가 고작 몇 개월 연습한다고 해서 프로 래퍼처럼 잘할 수는 없잖아요. 대신에 저는 학수의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학수는 고향에서 어린 시절 친구들을 잇따라 만나 기억하기 싫은 흑역사와 마주한다. 박정민에게도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는지 묻자 "데뷔하고 5년간 보냈던 무명시절"을 꼽았다.

"운 좋게 데뷔는 했지만, 그 뒤로는 무엇을 해도 큰 성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죠. 배우가 나와 맞는 일인가 싶기도 하고, 힘든 시기였죠. 그 순간을 떠올리면 언제 또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요. 그래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죠. 얼마나 무서운 순간인지 알기에 웬만하면 다시 겪고 싶지 않거든요."
그래서일까. 매 작품 박정민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저는 '천상배우'라고 할 만한 자질이 없어요. 제가 자라온 환경이나 살아온 과정, 성격도 그렇고요. 그러다 보니 영화를 찍을 때 그 시퀀스를 지배하는 정서나 감정을 표현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죠. 모르는 감정을 연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감정을 몸에 덕지덕지 붙여놔야 할 수 있죠.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 나쁘게 말하면 강박증이 있죠. 자격지심이기도 하고요."

박정민은 2005년 고려대 인문학부에 입학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고려대를 자퇴하고 200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 입학했다. 이어 2009년에는 연극원 연기과로 옮겨 연기를 배웠다. 한예종에서 과를 옮긴 학생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운 좋게 연기과에 들어갔지만, 졸업은 하지 못했다. '변산'에서 함께 연기한 김고은과는 한예종 선후배 사이다. 그는 "고은이는 제가 부러워하는 배우, 끼가 다분한 배우"라며 "그런 잠재력이 이 작품에서 완전히 발휘된 것 같다"고 칭찬했다.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하던 박정민이 얼굴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은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5)다. 이 감독과 인연으로 '변산'에서 처음으로 원톱 주연을 꿰찼다. 하반기에는 영화 '사바하' 개봉을 앞뒀다. '염력'을 시작으로 올 한 해에만 무려 4편의 영화에 얼굴을 내미는 셈이다. 내년에는 '사냥의 시간'으로 관객과 만나며, '타짜3'에 주연으로 발탁돼 조만간 촬영에 들어간다.
"저도 너무 달리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치긴 했어요. '여기까지만 하자'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내가 안 하고 다른 사람이 하면 얼마나 배가 아플까?' 생각하며 또 연기하게 되죠. 연기관이요? 글쎄요. 연기라는 것은 어떤 연기가 잘하는 것인지 아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아요. 그것을 찾아가는 중이죠."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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