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사들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2014년 재벌사들의 사익 편취 규제 도입 이후 내부거래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조사 자료를 내놓으면서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공정위가 재벌개혁 의지를 다시 한 번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현행 공정거래법과 시행령은 총수일가 지분율 30% 이상인 상장사와 20% 이상인 비상장사는 정상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계열사들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상장사는 꼼수를 부려 규제를 피하고 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특정 상장사는 총수일가의 지분율을 29.9%로 낮춰 규제대상에서 빠져나간 뒤 내부거래를 통해 단숨에 업계 최상위의 매출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총수 가족들이 직접 지분을 갖고 있지 않고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자회사들의 경우 내부거래 비율이 70%를 웃돌아도 규제대상에서 빠지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공정위는 이런 허점을 고쳐서 규제대상을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영에 참여하는 직계 위주의 대주주 일가는 주력 핵심 계열사의 주식만을 보유해달라"며 "나머지는 가능한 한 빨리 매각해달라"고 언급한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시스템통합(SI), 물류, 부동산관리, 광고 등 그룹 핵심과 관련이 없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를 중단하고 차라리 매각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라는 주문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재벌 3∼4세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으로 많이 이용됐다. 재벌 3세의 지분이 많은 회사에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면, 이 재벌 3세는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 다음 지주회사의 지분을 사들여 계열사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곤 했다. 이런 과정 자체가 다른 소액주주 등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공정경쟁을 해치고 기업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좀 더 강화하려는 공정위 움직임은 납득할만하다.
그런데 기업들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고 항변한다. 무엇이 문제가 되는 행위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은 비주력 계열사이지만 미래에는 주력 계열사로 성장할 수도 있기에 현시점에서 주력과 비주력을 구분해 정리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업계의 이런 의견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런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합리적인 선에서 제도개선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통제를 해야 한다. 법 집행도 엄정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제도에 모호함과 불합리한 측면은 없는지 면밀히 따져보는 것은 손해날 일이 아니다. 이런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법령의 실효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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