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리즘 포비아] ⑤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 답을 얻다(끝)

입력 2018-07-04 07:45   수정 2018-07-04 09:44

[투어리즘 포비아] ⑤ 부산 감천문화마을에서 답을 얻다(끝)
초기 주민 불편·갈등 연속…사생활 보호·주민복지사업으로 극복
투어길 제한, 상점 영업시간 설정, 소음 줄이고 에티켓 강조
마을 사업장도 11곳 운영, 수익금은 주민 생활개선 작업에 투입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관광객이 많아져서 피해만 본다면 누가 참겠어요. 마을이 발전하고, 마을의 수익금이 주민들에게 체감할 수 있는 복지로 돌아가야죠."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주민 김모(71·여) 씨는 마을에 관광객 발길이 잇따르면서 불편함도 있지만 생활환경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체감한다.

형형색색의 집들이 산허리를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선 감천문화마을은 그리스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풍경을 닮아 '부산의 산토리니'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정착하며 생긴 마을로 낙후되고 조용했던 이 마을에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것 10년 전인 2009년부터다.
부산시가 이 마을에서 '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골목 곳곳에 벽화와 조형물이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관광객 발길이 이어지며 2015년 138만 명, 2016년 185만 명, 지난해 205만 명 등 한해 100만 명이 넘는 손님이 찾는 관광지로 변신했다.

커피,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우후죽순 생기며 10개도 안 되던 점포가 80여 개로 늘었다.
처음에는 김 씨의 삶에도 불편함이 잇따랐다.
관광객 소음 탓에 여름에는 창문을 열어 놓기 힘들 정도였고, 집안 풍경을 보겠다며 현관문으로 고개를 불쑥 집어넣는 관광객도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이웃집 지붕을 밟고 올라가 슬레이트 지붕이 깨져 울타리를 설치하는 일도 발생했다.
관광객들로 인한 만성 차량정체와 주차공간 부족도 일상이었다.
이 때문에 관광객과 주민들은 종종 언성을 높였다.
관광객으로 혜택을 보는 주민과 피해를 보는 주민들이 나뉘며 주민 간 갈등 상황도 벌어졌다.
사하구와 주민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주민 사생활 보호를 위한 방법이 당장 시행에 들어갔다.
주민들 불만이 적은 기존 투어 길 외에는 관광객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경계를 분명히 했다.
황토색 규사로 길을 포장해 투어 길을 눈에 띄게 표시하고 주민들의 생활공간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에티켓을 지켜달라는 안내 표지를 곳곳에 부착했다.

마을 내 상점 운영시간도 제한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시간을 엄수하도록 해 소음을 줄여나갔다.
주민 간 갈등 해결을 위해서 주민 환원사업에도 방점을 뒀다.
마을이 관광지화되면서 생긴 '과실'을 누군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민들로 구성된 주민협의체는 11개의 마을 사업장을 설립하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수익을 창출했다.
해당 마을 사업장의 30여 개 일자리는 주민들만 채용해 고용 효과를 누리고 마을 사업장에서 번 수익금 중 매년 2억원 정도는 주민복지를 위해 사용했다.
마을에 목욕탕이 없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랫마을까지 내려가야 하는 지역 노인을 위해 수익금으로 '감내작은목간'이라고 불리는 목욕탕을 설립해 운영했다.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 거주하는 어르신을 위해서 마을 빨래방을 운영해 어르신들의 이불 빨래도 무료로 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마을버스 대신 주민들만 대상으로 무료로 운행하는 버스인 '행복 버스'를 830만원의 수익금을 투자해 운행하고 있다.
또 모든 세대에는 종량제 봉투를 무료로 지원하고 마을기념품인 황토 가마 소금도 나눠주고 있다.
마을 사업장을 제외한 상인회 구성원들도 축제 때 마을발전기금을 내거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냈다.
구청도 주민 불편을 해소하는 기반시설 설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도시가스 공급관 설치 비용을 지원하고 악취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위해 78억원을 투입해 마을에 분류식 하수관로를 설치했다.

또 골목길 회차로·쓰레기 집하장 조성, 위험축대 정비, 소방시설· 방범 폐쇄회로 TV를 설치했다.
마을환경 정비를 담당하는 공공근로 일자리 40개를 만들어 주민을 우선 채용하기도 했다.
이은정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담당자는 "밤에 지나가면 무서운 마을, 우범지역처럼 여겨졌던 마을이 관광객으로 인해 밝게 변했고 도시가스관, 하수도 설치 등 인프라가 생기며 주민의 삶이 나아졌다"면서 "주민 불편 사항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해소하려고 하는 지역민들과 행정청 의지가 결합해 만들어진 도시재생 롤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도 성숙한 관광문화 정착과 마을 주민을 위한 체감복지 향상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고 조언한다.
마을계획가로 활동하는 오광석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도시재생사업의 성장통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성숙한 관광문화가 정착되고 관광형 도시재생 사업으로 주민이 수익을 내고 이 수익이 마을과 주민을 위해 다시 쓰이는 선순환의 고리가 완성되면 주민들의 불만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형성되기를 기다리고, 협의가 안 될 경우 단기 성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기다려줄 여유가 필요하다"면서 "또 거점시설을 누군가 독점하게 되면 마을 주민들이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 있으니 이런 부분에 대한 배려도 충분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rea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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