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분배, 상상보다 훨씬 불평등…재분배 노력해야"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27일 "양극화 해소 전략인 최저임금 인상(사전 분배)과 정부 보조금 지급(재분배)이 모두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으며,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서울 여의도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 특별대담에서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등 생산성이 높은 지역은 최저임금 인상이 효과가 있으나 앨라배마, 미시시피 등 생산성이 낮은 지역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자료를 보니 한국은 상대적으로 최저임금 수준이 높은 것 같다"며 "프랑스의 경우 최저임금이 충분히 높아서 중도 성향 경제학자인 저조차 더 인상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현재 최저임금은 시급 9.88유로(약 1만2천674원)다.
이날 크루그먼 교수는 "부(富)의 분배는 상상보다 훨씬 불평등할 수 있다"며 "부가 극도로 편향되면 시장이 왜곡되므로 재분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소득분배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조세회피처에 숨겨진 부가 어마어마하다"면서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상속에 대해 과세하고 세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크루그먼 교수는 "양극화는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성장의 어두운 단면"이라며 미국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Elephant graph)을 인용했다.
코끼리 곡선은 세계화가 활발히 진행된 1988∼2011년 전 세계인을 소득 수준에 따라 100개의 분위(가로축)로 줄 세웠을 때 실질소득 증가율(세로축)이 얼마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 일부 빈곤국과 고소득국가의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은 세계화 속에서도 여전히 극빈층인 반면 글로벌 상위 1%와 중국 및 개발도상국의 중산층은 급격히 성장하면서 소득 격차가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양극화가 심화한 원인의 하나로 무역 확대를 꼽았다.
세계대전 이후 국제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초세계화'가 진행돼 교역 능력을 갖춘 최상위층과 중간계층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역시 대단한 경제성장을 거뒀고 부의 분배를 통해 생활이 개선됐지만, 현재는 (평등 정도가) 과거와 같은 수준이 아닐 것"이라며 "이런 현상은 당연히 긍정적이지 않으며, 발전 결과를 공유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양극화는 사회·정치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데, 미국이 그 부정적인 것의 선봉에 서있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양극화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라며 "다만 분명한 사실은 극빈층을 글로벌 경제에 편입시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더 커진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근로시간 상한선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 것과 관련해 "52시간도 이미 긴데, 선진국인 한국이 그렇게 많은 시간 일한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미국은 이미 수세대 동안 주당 40시간 근로를 유지해왔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측은 "크루그먼 교수가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이란 뜻으로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날 대담에 배석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소득 양극화의 원인은 근래 과학기술이 '숙련 편향적'으로 발달하면서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커진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부의장은 "소득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교육기회와 직무능력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관련 제도와 정책 보완이 필수"라며 "급속한 기술변화에 따른 근로자의 숙련 향상을 위해 근로자 직무교육·훈련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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