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리즘 포비아] ③ 여수 밤바다의 낭만?…원주민에겐 고통

입력 2018-07-02 07:45  

[투어리즘 포비아] ③ 여수 밤바다의 낭만?…원주민에겐 고통
제주 농촌마을 담 넘어 이웃이 숙소…소음·교통난·범죄·환경문제 극심
여수 낭만포차 애물단지 떠올라·전주 한옥마을 거주세대 10년 만에 급감

(전국종합=연합뉴스) "젊은 관광객들이 밤마다 마을 안에서 술을 마시면서 자주 시끄럽게 합니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서 나고 자란 김두경(85) 할아버지는 일부 관광객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떠드는 바람에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해안을 낀 농촌마을 평대리는 돌담과 초가 등 옛 제주의 이색적인 모습으로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옛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와 민박집이 마을 안에 들어서면서 담을 마주한 바로 이웃집이 관광객들이 묵는 숙소로 변한 곳도 많다.

평대리 외에도 조용했던 구좌읍 대부분 마을에서 원주민들은 소음 피해를 겪거나 외부인으로 인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2월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구좌읍 게스트하우스도 사건 발생 전 밤마다 '술 파티'를 열어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경찰이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 직후 변칙 운영업소를 단속한 결과 나이트클럽 형태로 운영하는 등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업소 6곳이 적발되기도 했다.
제주자치경찰도 같은 달 20∼21일 숙박업 신고도 없이 게스트하우스를 불법 운영한 2곳과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업소 20곳을 무더기 적발했다.
쪽빛 해안을 마주한 구좌읍 월정리는 마을 안쪽까지 상가와 다가구 주택, 게스트하우스 등 갖가지 공사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소음과 먼지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좁은 도로에 주민과 관광객, 렌터카 차량과 공사 차량이 연일 뒤엉키다 보니 혼잡상황은 일상화됐다.
3∼4년 전부터 월정리가 명성을 얻으면서 개발 열기는 현재까지 뜨겁다.
길이가 1㎞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해변에 신축 건물들이 계속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주민 현모(49·여)씨는 "월정리가 유명해진 것은 좋지만, 해안 방향으로 바로 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우리 집은 하루 대부분 그늘이 지고 풍경이 가려졌다"며 불평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상당수 원주민은 별다른 소득 없이 주택밖에 보유한 게 없는데도 고액의 세금 부담을 떠안게 돼 난감해 하고 있다.
월정리의 경우 1㎡당 공시지가는 지난해 92만원으로 3년 전인 2014년 8만원에 비해 11배가 상승했다.
해안도로가 있는 곳의 공시지가는 2000년 4만5천원과 비교해 20배 이상 올랐다.
관광객과 인구가 늘면서 쓰레기 처리와 오·폐수, 분뇨 처리 대책도 관건이다.
인구 증가에 대비, 쓰레기 매립장과 하수종말처리장 등 환경 인프라 시설을 미리 확장하지 못한 정책적 실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급작스러운 내·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인해 포화 시점이 급속도로 빨라져 곳곳에서 환경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 '낭만'은 없고 '술판'만
제주뿐만이 아니다. 밤바다로 유명한 여수와 옛 전통을 간직한 전주 한옥마을의 주민들도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 관광 공포증)를 앓고 있다.
전남 여수시 웅천동에 사는 김정훈(37)씨는 주말이면 종포해양공원 방면으로는 아예 가지 않는다.
금요일 오후부터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량에 밀려 평소 5분 이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40∼50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대중가요 '여수밤바다'로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른 여수는 종포해양공원에 낭만포차가 들어서면서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들로 중앙동과 고소동은 주차장으로 변하고 돌산대교에서 이순신광장까지 길게 차량 행렬이 이어진다.

낭만 가득하다는 여수 밤바다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주말인 23일 오후 종포해양공원을 찾았다.
이순신광장에서 낭만포차가 있는 종포해양공원을 잇는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공영주차장은 만차였고 그나마 차를 댈 수 있는 도로변은 이중 주차된 차량으로 가득했다.
어렵게 주차한 뒤 찾은 낭만포차에는 초저녁이었지만,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고성으로 어수선했다.
주말에만 운영하는 버스킹 공연이 곳곳에서 펼쳐져 낭만적인 분위기도 연출됐다. 18개에 이르는 낭만포차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자리를 못 잡은 관광객들은 근처 편의점에서 술을 사와 벤치에서 마셨다. 한가롭게 산책하는 시민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2016년 5월, 15개 점포로 문을 연 낭만포차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낭만포차 인근 고소동과 중앙동, 종화동 주민들은 소음과 쓰레기, 주차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종포해양공원 인근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에도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한가롭던 골목길까지 밀려든 차량으로 북적인다. 폭 10m에 불과한 이면도로는 차들이 양쪽으로 주차해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았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는 관광객이 버리고 간 빈 맥주캔과 소주병이 나뒹굴었다.
고소동 주민 박모(57)씨는 "주말이면 카페를 찾은 관광객이 아무렇게 주차하고 가버려 주차대란이 일어난다"며 "관광객들이야 하룻밤 추억을 만든다지만, 이곳에 사는 시민들은 취객들의 소음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아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와 소음 민원이 잇따르자 여수시는 낭만포차의 운영시간을 하절기 오전 5시에서 오후 2시까지로 줄였다. 주민들의 불편을 덜기 위해 해가 뜨기 전에 쓰레기를 치우고 해양공원 내 잡상인들을 단속하고 있다.
여수시 노력에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낭만포차를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수시민협은 지난 19일 논평을 내어 "시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가족과 휴식할 수 있도록 공원에서의 음주를 금지하는 추세인데도 여수시는 나서서 음주 행위를 방치하고 있다"며 "관광객은 모시고 시민은 몰아내는 행정은 인제 그만하라"고 주장했다.
송하진 여수시의원은 "실제로 여수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힘들어하는 만큼 낭만포차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만성리 해수욕장 등 다소 소외된 지역으로 옮겨 활성화하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전주한옥마을, 상업화에 정체성 상실
한해 1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 전북 전주 한옥마을도 상업화로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멋스러움을 간직한 전주 한옥마을이 자고 나면 늘어나는 상업시설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소음과 교통난에 시달리다 못한 원주민들의 탈출은 이른바 투어리피케이션(tourification)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옥마을 내 세대수는 2008년 1천60여 가구에 달했지만 10년이 흐른 올해 초 610여 가구로 절반으로 확 줄었다.
반면 10여 년 전 작은 슈퍼와 약방 등을 제외하면 상업시설이 전무했던 이곳의 상업시설은 650여 곳으로 늘었다.
이 중 50%는 그것도 한옥마을 관광객이 급증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생겨난 업소들이다.
최근 들어 주차난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주말마다 전국 각지에서 몰리는 차량과 관광객들이 뒤엉키면서 르윈호텔, 남천교 등 한옥마을로 진입하는 입구 곳곳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기 일쑤다.
전주시가 대형 차량의 구도심 진입을 제한하고 한옥마을 일대를 '보행자 중심 도로'로 변화시켜 나가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이곳을 떠나 전주 인근 외곽에 둥지를 튼 김모씨는 "30년 넘게 살아온 한옥마을을 떠나기는 쉽지 않았지만, 주말은 물론 평일 늦게까지 밀려든 관광객들의 소음과 차량 행렬 때문에 온전한 생활이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임청, 형민우, 고성식 기자)
kos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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