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테헤란의 대시장(바자)의 상인들이 24일부터 사흘간 이례적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벌인 시위를 두고 미국과 이란의 심리전이 치열하다.
미국은 상인층의 시위가 확산해 이란 신정 정권을 흔드는 '민중 봉기'로 확산하기를 기대했고, 이란 당국은 외부세력이 선동했다면서 강경하게 대응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7일 자신의 트위터에 "부패한 이란 정권이 아사드(시리아), 헤즈볼라(레바논), 하마스(팔레스타인), 후티(예멘)에 국가의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 이란에서 시위가 계속되는 건 당연하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이란 국민은 지도층의 부패, 불의, 무능함에 지쳤다. 국제 사회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덧붙이며 AP통신이 송고한 이란 상인들의 시위 사진을 첨부했다.
강경한 반(反)이란 성향인 미 공화당 톰 코튼 상원의원도 26일 낸 개인 성명에서 "이란 거리를 메우는 저항의 물결은 자발적인 외침이다. 미국은 이란 국민 편에 설 것이며 유럽도 그래야 한다"고 밝혔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제한적인 이란에서 최근 사흘간 수천 명이 참여한 시민의 집단행동은 이례적이다.
이들 상인층은 "파업"이라는 구호와 함께 가게를 닫고 이란 리알화 폭락에 따른 물가 상승, 수입 규제 강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란 당국은 최루탄과 경찰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했다.
테헤란 검찰청은 "테헤란 대시장에서 벌어진 소요와 파업을 주동한 자들을 체포했다"고 발표하면서 외부세력이 개입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당국이 지목하는 '외부세력'은 미국,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해외의 반정부 세력이다.
이란 당국은 지난해 말 약 1주일간 전국적으로 확산한 반정부·반기득권 시위를 진압하면서도 외부세력이 폭동을 선동했다고 규정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도 27일 사법부 고위인사들을 만나 "일부 세력이 이란 정부에 구조적인 부패가 문제라는 여론을 조장한다"면서 "경제 분야의 안정을 해치려는 이들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란 사법부는 한국과 달리 검찰과 법원을 모두 포함한다.
이란 당국은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시위 참여층이 대학생이 아니라 이란의 유통망을 쥔 최대 시장의 상인이라는 점에서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이 일어났을 때 테헤란 대시장의 상인 조직은 종교 세력에 자금을 대면서 팔레비 왕정 붕괴에 크게 역할 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란 상인층의 반정부 시위는 일회성이 아니라는 해석이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났던 40년 전과 달리 이들 조직이 파편화돼 이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현 정부가 경제 개혁을 추진하면서 시장의 상인층이 누렸던 밀수와 외화 암시장 거래의 특권이 약화했고, 소비자가 재래시장보다 현대식 대형 마트를 선호하게 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장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또 표면적으로는 이번 시위가 단일 대오인 것처럼 보이지만, 약탈을 우려한 상인들이 영업을 중단한 사례도 많아 시위 발생 자체만으로 정치적 의미와 반향을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고 해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 정치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란 내 시위를 지지하는 것도 이란 현지에선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낳는 분위기다. 이란 국민이 정부 정책에 못마땅하면서도, 자신들이 겪는 경제난의 원인이 미국의 일방주의적 경제 제재라는 인식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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