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소불 '프랑스혁명사' 개정판 첫 번역·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내년은 근대 민주주의 토대를 놓은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프랑스혁명이 230주년을 맞는 해다.
프랑스혁명은 1789년 7월 11일 프랑스 국왕이 개혁 지향 인물인 네케르를 재무총감에서 해임하자 7월 14일 성난 군중이 정치범 수용소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바스티유 함락 소식을 접한 지방에서도 잇따라 반란이 일어났고, 왕권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결국 국민의회는 8월 봉건제 폐지를 선언하고 인권선언을 채택했다.
출판사 교양인이 펴낸 신간 '프랑스혁명사'는 프랑스혁명 연구에 매진한 역사학자 알베르 소불(1914∼1982) 소르본대 프랑스혁명사 강좌 주임 교수가 쓴 대표적 프랑스혁명 안내서다.
소불은 1962년 '프랑스혁명사' 초판을 냈고, 20년 뒤 수정 작업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개정판은 제자들이 본문을 정리하고, 소불이 별세하기 전 발표한 논문 두 편을 더해 출간했다.
국내에는 초판본이 1984년 번역됐으나, 개정판은 소개된 적이 없었다. 34년 만에 나온 개정판은 초판본과 마찬가지로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프랑스혁명은 전통적으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을 촉발했고, 부르주아 세력이 농민과 민중의 지원과 견제 속에 근대사회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고 파급력이 큰 사건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영미 학계를 중심으로 프랑스혁명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심지어 프랑스혁명을 폭력, 전체주의, 집단 학살의 전조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소불은 "프랑스혁명은 민중과 농민의 지지를 받은 부르주아 혁명이었다"고 강조한다. 봉건제 중압과 특권에 대한 증오에서 벗어나려는 대중이 보낸 지지가 혁명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추적하면서 18세기 서민의 생활 수준이 매우 열악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혁명이 일어날 무렵 프랑스에서는 흉작으로 곡물 가격이 치솟고, 가계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다.
저자는 "최초의 혁명적 봉기는 경제·사회적 동기를 지녔을 뿐, 정치적 소요는 아니었다"며 "그러나 민중 소요는 권력을 위태롭게 하는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었다"고 분석한다.
농민과 민중 참여에 줄곧 주목한 저자는 결론부에서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적 평등과 국민통합을 성취한 혁명"이라고 평가하면서 "혁명 부르주아는 민중계급을 끌어들이기 위해 애초 특권계급에 맞서 제기했을 뿐인 권리의 평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최갑수 교수는 역자 후기에서 "역사의 견인차인 혁명을 반혁명으로 치부하는 행위는 비역사적이고 반역사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소불을 비난한 이들의 빈약한 이론은 교조주의의 결과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는 프랑스혁명사 연구자 미셸 보벨의 글을 인용했다.
812쪽. 3만8천원.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