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아 버렸다면 처벌불가…전문가 "법령 정비해야"
(오산·수원=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최근 갓 출산한 아기 시신을 버린 미혼모가 경찰에 "사산아였다"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행법상 출산 전 이미 사망한 아기를 버렸다면 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불합리한 현행 법령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기 화성동부경찰서는 28일 10대 여성 A씨의 신생아 사체유기 사건에 대해 법률 검토를 벌이고 있다.
A씨는 전날 오후 3시께 자신이 거주하는 오산시 한 아파트 화단에 갓 출산한 여자 신생아 시신을 버린 혐의를 받는다.
숨진 아기는 몸무게 3.2㎏, 키 51.5㎝였고, 원기둥 모양의 철제 사탕 용기(지름 23㎝, 높이 20㎝) 안에 넣어진 채 버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A양은 "아기가 숨진 상태에서 태어나 시신을 버렸다"라고 주장했다. 산모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시신 유기의 방법이 상당히 엽기적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시신을 부검해 아기가 출산 당시 생존해 있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현행법상 사체유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분만 당시 아기가 살아 있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과 판례에선 '분만 개시설'을 통설로 하는 탓에 산모가 진통을 호소해 분만이 시작될 때부터 태아를 법적 '인간'으로 보고 있다.
태어날 때 이미 숨진 아기는 법적으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봐야 하므로 사체유기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달 오산에서는 원룸 건물 옥상에 갓 출산한 남자 아기 시신을 갖다버린 산모 B(26)씨가 처벌을 면한 사례도 있었다.
B씨는 올 3월 자신이 낳은 아기 시신을 버렸고, 2개월 뒤 시신이 우연히 발견돼 경찰에 붙잡히자 "아기가 숨진 상태로 태어나 2∼3일 뒤 버렸다"라고 주장했다.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시신이 유기된 뒤 발견될 때까지 2개월간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탓에 '감정 불가'라는 최종 판단을 내놨다.
이로 인해 B씨는 버린 아기가 사산아였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하게 됐다.
반면 수원에서는 자신이 낳은 아기를 버린 뒤 "사산아였다"라고 주장하던 10대 산모가 아기의 시신에서 '첫 숨' 흔적이 드러나면서 처벌을 받게 됐다.
C(19)씨는 올 2월 수원에 있는 자택 자신의 방에서 낳은 여자 아기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넣어 방안에 방치한 채 외출했다가 이를 발견한 어버지의 설득으로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 조사에서 C씨는 "이미 숨진 아기였다"라고 주장해 처벌을 면할 뻔했으나 국과수 부검결과 아기가 폐 호흡한 흔적이 드러나면서 사체유기 혐의로 처벌받게 됐다.
이처럼 신생아 시신을 버린 행위는 똑같은데 사산아였는지에 따라 처벌 여부를 달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사산아였다는 사실만으로 시신을 아무 곳에나 유기한 산모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며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영아 유기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것인지, 복지적인 측면에서 미혼모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것인지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며 "생명은 어떤 이유에서든 존귀하다는 사회적인 인식을 환기하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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