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으로 학생모집 숨통 트인 자사고들…"후기전형 이동 자체가 위헌"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헌법재판소가 고교 평준화 지역의 자율형사립고 지원자에 대한 일반고 이중지원을 금지한 법령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다양한 교육정책이 줄줄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당분간 교육부 및 시도 교육청과 자사고 사이에 입시 등 여러 교육정책을 둘러싼 긴장 관계나 갈등 양상이 지속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 자사고·외고 폐지, 고교학점제, 성취평가제 줄줄이 영향
29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날 헌법재판소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조항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고교 평준화 지역에서는 자사고와 일반고에 함께 지원할 길이 열렸다.
자사고와 외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외고와 자사고, 국제고가 여러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국가교육 차원에서 폐지 문제를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당장 폐지 정책을 꺼내 드는 대신 이들 학교의 입시전형을 후기로 바꾸고 이중지원을 금지한 것은 학생·학부모의 반발과 지방선거 등을 고려한 '연착륙' 정책으로 해석됐다.
당장 자사고·외고 간판을 떼도록 하지 않더라도 이중지원이 금지되면 불합격 시 원거리 학교 배정의 부담을 갖게 되는 학생들이 지원 자체를 꺼리게 되고, 이들 학교가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사고·외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하는 학교에 적지 않은 재정지원을 약속함으로써 '당근'까지 제시했다.
자사고를 중심으로 '고사(枯死·말라죽음) 정책'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자사고·외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일반고에 함께 지원할 수 있다면 학생들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상당 부분 줄어든다.
반대로 정부가 꺼낸 '우선선발권 박탈' 카드의 실효성은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이럴 경우 단순히 자사고·외고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선호도가 유지되는 것뿐 아니라 진보교육감들이 강력하게 요구해 온 다양한 교육정책이 줄줄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다.
성취평가제는 학교에서 성적표에 A, B, C 형태의 개인 성취도를 절대평가해 표기하는 방식이다.
대입에서는 아직 상대평가로 매긴 등급 성적을 쓰지만, 교육현장에서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고 '과정 중심' 평가를 하려면 절대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현 고교체제에서는 절대평가를 할 경우 자사고·외고 쏠림 현상이 심해질 수 있어 성취평가제 전에 고교체제 개편이 먼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성취평가제 적용이 미뤄질 경우 고교학점제도 영향을 받게 된다.
고교학점제는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고 일정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하는 제도다.
개인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맞춤형 시간표를 짜서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좋은 성적을 받기 수월한 대규모 수업으로의 쏠림 현상이 생길 수 있어 성취평가제가 먼저 도입돼야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 숨통 트인 자사고들 "헌재 결정 환영…후기전형 이동 자체도 위헌"
학생모집에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된 자사고에서는 헌재 결정을 환영했다.
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불합격할 경우 전혀 지망하지 않은 학교로 원거리 통학을 하라는 것은 지나친 불이익이자 비교육적 처사라는 것이다.
헌재가 자사고의 선발 시기를 후기로 바꾼 것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것에 대해서도 본안 소송에서 심리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지 정부의 결정이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헌법재판 제도상 가처분은 본안 결정에 앞서 잠정적으로 이해 관계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최종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일정한 사전조치가 필요할 때 행하는 조처다.
오세목 중동고 교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자사고를 도입할 당시, 학교가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사회적 배려자를 20%가량 선발하는 대신 정부는 전기 선발권을 약속했다"며 "국가가 약속을 어기고 학교의 동의 없이 선발 시기를 후기로 옮긴 것은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박삼옥 상산고 교장은 "(자사고 입시를) 전기에서 후기로 바꾼 것에 대한 판단은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최종 판단을 내릴 때까지 학생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이중지원 금지만 효력을 정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장은 "전북의 경우 전주·군산·익산지역 학생들은 자사고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30km 떨어진 학교에 배정받을 수도 있다"며 "사실상 자사고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셈인데 이는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각 학교는 여름부터 본격화할 입시설명회에서 학부모들에게 이중지원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강조할 계획이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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