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은 29일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역사적 대전환의 기회를 슬기롭게 포착, 활용해서 적극적 평화를 이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임 명예이사장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연합뉴스와 통일부가 개최한 '2018 한반도평화 심포지엄' 특별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다음은 임 명예이사장의 특별강연 내용 요약.
『한반도는 지금 냉전을 끝내고 평화를 만들어갈 역사적 대전환의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북미정상회담은 불신에 기초한 강압적 접근 방법이 아니라 '상호 신뢰구축이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확신에 기초한 새로운 접근 방법에 합의했다. 핵실험 중단 등 북한의 자발적 조치와 이에 상응한 미국의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조치가 취해졌다. 우리는 이제 한반도 냉전을 끝내고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통일되지 않은 분단체제 하에서 우리가 이룩해야 할 평화와 평화체제라는 것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를 먼저 생각해보겠다.
첫째, 우리가 이룩하려는 평화는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다. 상대방의 적대 의도와 능력에 변화를 유도해서 안보 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전쟁의 구조적 원인 자체를 없애 나가는 평화, 즉 '적극적 평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적대관계를 지속하면서 군사력 증강과 안보동맹 유지 등 안보 태세를 강화하면서 전쟁을 억제하는 평화, 즉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를 유지해 왔다. 소극적 평화를 지키면서 적극적 평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결코 분단을 고착시키는 평화체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분단 상태에서는 정통성 독점 경쟁과 승패의 게임 유혹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당면한 시급한 과제는 군사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일이다.
적대관계는 정전체제에 뿌리내리고 있다. 적대관계의 뿌리인 군사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노력 없이는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가 미중 갈등이나 분쟁의 빌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물론이거니와 동북아의 평화질서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도 4자 평화회담을 조속히 개최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이 힘을 합쳐 4자 평화회담을 성사시키고 또한 한목소리를 내어 주도해 나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철의 장막으로 분리돼 냉전을 전개해온 동서 양대 진영 국가들은 3년간의 협상을 통해 '헬싱키 협약'을 체결하고 15년간의 이행 과정, CSCE(유럽안보협력회의) 프로세스를 통해 마침내 냉전을 끝내고 파리조약을 체결해 유럽의 새로운 평화질서를 만들어 냈다.
평화체제 구축에 이르는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종전선언'을 하고 곧바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까지는 평화를 담보할 수 있도록 비핵화와 북미 적대관계 해소 등 냉전을 해체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4자 평화회담에서는 우선 전쟁을 끝내자는 종전선언 합의와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갈 근본적이고도 포괄적인 조치들을 마련해 가칭 '종전협약' 또는 종전선언을 채택해야 할 것이다.
종전선언은 '전쟁이 끝났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전쟁 불안감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단 상황에서는 종전선언을 한다고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종전을 선언한 베트남 평화협정은 미군의 철수를 보장했지만, 전쟁 재개로 이어진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쟁이 끝났다는 정치적 선언인 종전선언보다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만들어가자'는 법적 효력을 갖춘 가칭 '종전협약'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우선 종전선언을 하고 종전협약 체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종전협약은 전쟁을 끝내고 통일 이전의 분단 상태에서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주요 실천과제들을 포괄적으로 담은 협약이다. 유럽의 헬싱키 협약과 같은 것이다.
종전협약에 포함될 주요 실천과제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남북 간은 물론 북미 간 적대관계 해소와 관계정상화 조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폐기,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와 군비 감축을 통한 군사력 균형 유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등을 포함한 외국군 문제, 동북아 안보 협력 증진책, 그리고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과 평화체제 유지의 주체가 될 '남북연합' 구성 문제 등을 망라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다음 단계는 '종전협약'에서 제시한, 합의한 실천적 조치들을 이행하는 단계다. 이는 65년 된 냉전 구조를 대체하고 평화체제 구축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해 나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 이행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겠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조하며 많은 국내외적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다행히, 최근 북미정상회담은 이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인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 문제를 조속히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통상 신고, 사찰, 폐기, 검증, 감시 등의 긴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미국의 까다롭고 오래 걸리는 행정적·법적 절차라는 어려운 과정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양측 모두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인 2020년 말까지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위한 불가역적 수준의 조치를 취할 필요성과 실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해 전임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추진하며, 북한의 핵 동결을 가져왔던 북미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는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중단된 사실을 기억한다. 'Anything But Trump' 같은 현상이 일어나서는 정말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군사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단계로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에는 군사정전협정 폐기에 따르는 조치들, 이를테면 평화를 보장하는 조치들이 있다. 불가침, 분쟁의 평화적 해결, 경계선, 대량살상무기 불(不)보유, 군사력 균형 유지, 평화감시방안 등과 함께 남북연합 구성 운영을 통한 평화체제 확립 문제 등이 포함될 것이다.
평화협정은 평화의 직접 당사자인 남과 북이 주체가 되고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이 보증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추인하는(2+2+안보리)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의 직접 당사자는 남북한이다. 남북한이 분단 상황에서 평화를 만들고 유지 관리하며 평화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협력기구가 필요하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제시했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합의한 대로 '남북연합'을 구성·운영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은 '남북연합헌장'을 제정하고 남북연합기구를 설립·운영하면서 '사실상의 통일' 상황을 실현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역사적 대전환의 기회를 슬기롭게 포착, 활용해서 적극적 평화를 이룩하고 남북연합을 구성해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평화심포지엄] 임동원 "법적효력 갖춘 4자 종전협약 바람직"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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