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지방정부 상생, '특별지방자치단체' 만들어야"
(전국종합=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경기 평택·안성·용인의 39년째 이어지는 상수원보호구역 갈등',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 사용 기간 연장', '수원 공군비행장(수원군공항) 이전', '부산과 경남의 먹는 물, 신항 경계 조정, 신공항 건설' 등….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한 지 23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지방정부 간의 해묵은 갈등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일부는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양상도 나타난다.
이로 인한 예산과 행정력 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치권을 둘러싼 갈등은 중앙정부와의 관계에서뿐 아니라 지자체 간에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각 자치단체 간 극한 대립양상은 국민 누구나 경험했을 정도다.
이에 따라 민선 7기에서는 국가의 통합성을 유지하면서 지방자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상생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강산 4번 바뀔 동안 이어진 물 갈등
경기 평택·안성·용인 등 3개 시는 39년째 상수원보호구역 갈등을 빚고 있다.
1979년 평택시 진위면 송탄취수장 주변(3.859㎢)과 평택시 유천동 유천취수장 주변(0.982㎢)은 송탄상수원보호구역 및 평택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송탄상수원보호구역에는 용인시 남사면 1.572㎢가, 평택상수원보호구역에는 안성시 공도읍 0.956㎢가 각각 포함돼 이들 지역의 공장설립 등 개발사업이 엄격히 제한됐다.
이 때문에 용인·안성시가 평택시에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위한 협조를 요구했지만, 평택시는 안정적인 물 공급과 수질오염 방지 등을 이유로 반대, 그간 갈등을 겪어왔다.
경기도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올해 3월 경기도수자원본부에 상생협력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조만간 민간인이 참여하는 정책협의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또 3개 시의 단체장이 모두 자유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어 해결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비행장 이전, 쓰레기매립지도 불화 요인
역사, 지리적으로 인접한 수원시와 화성시는 수원에 있는 공군비행장(수원군공항) 이전 문제로 갈등이 심하다.
국방부가 지난해 2월 수원시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원군공항 예비이전 후보지로 화성 화옹지구를 선정해 발표하면서 두 이웃 지자체는 견원지간이 됐다.
두 시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시장이었지만, 지역의 최대 현안을 두고는 일절 협력하지 않았다.
서울, 경기, 인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도맡아 처리하는 인천 서구의 수도권매립지 사용 기간을 둘러싼 갈등도 수도권 3개 광역단체 사이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박남춘 인천시장 당선인은 2015년 환경부·서울시·인천시·경기도 등 '매립지 4자 협의체'의 합의에 대해 사용 종료 시점을 분명하게 적시하는 방향으로 재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와 전남도도 광주 민간공항과 전남 무안공항 통합, 광주 군 공항 이전, 한전 공대 유치 경쟁,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 공동발전기금 조성 등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인력채용 놓고도 신경전
대전과 충남, 세종시 등 3개 광역단체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의무채용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전·충남은 세종시가 건설됐다는 이유로 혁신도시가 조성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전에는 지역인재 의무채용 공공기관이 한 곳도 없고, 충남도 미비한 수준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대전과 충남도는 세종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 범위를 충청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종시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웃사촌인 부산과 경남은 먹는 물 문제, 신항 경계 조정, 신공항 건설, 경마공원 유치, 낙동강 하굿둑 개방 등 여러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낙동강 하류의 표층수를 식수를 사용하는 부산이 안정적이고 깨끗한 상수원 확보를 위해 남강댐 물을 끌어오겠다고 하자 경남은 갈수기에 경남도 물이 부족하다고 반대하면서 먹는 물 문제는 10년을 끌고 오고 있다.
오거돈 부산시장의 최대 공약인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문제를 두고도 지역 간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신공항 결정 과정에서 부산과 대립했던 대구·경북은 이미 결정 난 국가정책을 광역단체장이 뒤집는 것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대구취수원의 구미 이전을 두고 양 시는 9년 5개월째 큰 진전 없이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다.
◇ 전문가 "심의단계부터 분권 영향 평가 필요"
이처럼 지자체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은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입지와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표를 먹고 사는 민선 자치단체장은 관선 단체장과 달리 국익보다 지역 여론이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역 여론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예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립을 둘러싼 부안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지역 여론이 악화할 경우 국가가 여론을 돌려놓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 시대의 상생협력 모델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관련 자치단체들이 사업추진 기획단계에서부터 모두 참여하는 행정협의회 운영을 의무화해 마찰의 소지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홍준현 중앙대(공공인재학부 교수) 국제처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을 해소하려면 지방 관련 정책이나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지방정부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평가하는 분권 영향평가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법령을 만들 때 입법예고 전 단계에서부터 자치단체협의체의 의견을 먼저 듣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정부 간의 갈등을 중앙정부가 나서서 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지방정부 간의 합의로 '특별지방자치단체'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순기 최병길 김상현 김인유 장영은 변우열 신민재 손상원 최영수 양영석 양지웅 노승혁 기자)
n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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