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은 굿네이버스 제네바 대표 "난민 최대 수용국은 이슬람 국가들"
"아프리카도 난민 받는데 한국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사회인식 넓혀야"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제주도에 있는 500여 명의 예멘인은 난민 문제가 더는 먼 유럽이나 중동, 아프리카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이들의 지위 문제에 특정 종교에 대한 반감, 치안 우려가 결합하면서 사회적 갈등은 공포를 자양분 삼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때마침 국제이주기구(IOM) 신임 사무총장 선거가 열린 제네바 국제회의센터(CICG)에서 만난 성하은(44) 굿네이버스 제네바 국제협력사무소 대표는 난민문제에 대해 근거 없는 두려움을 버리고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대표는 지역 사무소 대표로 제네바에서 9년째 일하고 있다.
성 대표는 제네바 유엔 기구, 비정부기구(NGO) 협의체에서 NGO 대표로 난민 문제 해법을 모색하면서도 아프리카 난민캠프 현장도 자주 방문하는 등 이론과 현장을 폭넓게 경험한 인권·난민 문제 전문가다.
그의 부친은 참여정부 때 교황청 대사를 지낸 성염 전 대사다.
무겁지만 낯선 난민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가 비난 댓글로 곤욕을 치른 배우 정우성 씨 일에 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성 대표는 "정우성 씨는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인데 난민캠프를 한 번이라도 가보고 그 실상을 겪어보면 그렇게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며 정우성을 옹호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난민에 대한 증오심이 난민에게서 직접 비롯됐다기보다 사회적 불안과 어려움, 마음속 압박감 등이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사회적 치유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도 했다.
다음은 성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 난민을 정의해보자. 비행기를 타고 온 제주도의 예멘인들을 난민(refugee)이 아닌 경제적 이주자(economic migrant)로 보는 주장도 있다. 용어가 혼동돼 쓰이지만, 유럽도 경제적 이주자가 사실 더 큰 문제인데.
▲ 난민 규정 핵심 요소는 종교, 정치, 안보 때문에 실질적 위협을 느끼느냐 하는 점이다. 제주도의 예멘 난민은 돌아갔을 때 어쨌든 총에 맞아 죽거나 소속 분파에 따라 핍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경제적 의도가 있다고 난민 성격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는 사람 중 유럽에 가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두 가지는 혼재돼 있다.
-- 난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자리 잡게 된 역사적 배경을 짚어보면.
▲ 난민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종교 시설이 난민을 수용하는 전통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다 있었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난센(노르웨이의 외교관·정치가)의 노력이 있었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세계인권선언이 나오고, 종교만으로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지자 1951년 유엔 난민협약이 만들어졌다.
-- 지금은 난민은 범죄자라는 생각이 도식처럼 돼 있다.
▲ 지난해 유럽 테러는 난민이 아니라 이주민 2세대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난민과 이주민 사이의 경계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쾰른에서 있었던 집단 성폭행 같은 걸(정치적 목적이 있는) 테러라고 규정할 수 있겠느냐. 한국에서도 이주자의 강력 범죄 문제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외국인 노동자 전부를 강간범으로 일반화하는 건 객관성이 없는 접근이다.
-- 유럽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 실상을 보면 이렇다. 거의 최다 난민을 수용하고 버티는 국가들은 레바논, 터키, 요르단,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다. 그들의 열려있음과 인도주의를 봐야 한다. 요르단에서는 초기에 난민이 오자 한 가족이 아파트 한 방에서 네 명이 자고 다른 방은 난민에게 내어준 채 몇 년을 같이 지낸 일도 있다.
유럽의 시계를 20년, 30년 전으로 돌려보면 가장 두려운 테러리즘은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적군파 등 가톨릭을 배경으로 한 단체들이었다. 그렇다고 가톨릭을 테러리스트라고는 안 한다.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가 무슬림이어서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테러리즘이 종교를 도구로 삼은 거다. 논리적 고리를 헷갈리면 안 된다.
-- 난민에 대한 두려움, 공포를 어떻게 봐야하나.
▲ 스위스에서 2009년 이슬람 사원 첨탑(미나레트)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됐다. 당시 제네바처럼 무슬림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에서는 미나레트를 반대하는 비율이 40%였는데 아펜젤러, 슈비츠처럼 산악 지대, 평생 이슬람 사원을 볼 일이 없는 곳에서는 70%가 넘었다. 미지에 대한 불안감이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미디어에서 자극적으로 다뤄지는 이슈만 보고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기회를 얻지 못한 영향이 크다.
우리도 1994년 난민조약 가입 이후 지금까지 800명, 인도적 체류허가자까지 합하면 2천300명의 난민과 준난민이 있다. 거부당한 사람만 1만7천 명이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서구는 많은 투자로 난민을 사회에 편입시키려 노력한다.
우리는 결혼이주여성에게 조차 그런 노력을 제대로 못 했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이주노동자 없이는 안 돌아간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한국 사회의 일원이자 재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비록 보수를 받지만, 그들이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고 그건 우리가 받는 혜택이다.
우리가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면 경제 사회적 대가를, 우리에게 와서 노동력 줄 수 있는, 갈 곳 없는 난민에게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사회 인식을 그렇게 넓혀야 한다.
--아프리카의 '잊힌 난민'들 실상은.
▲우간다는 인구가 4천100만 명인데 난민이 140만 명이다. 르완다는 인구 1천200만 명에 17만 명, 탄자니아는 5천500만 명에 30만 명이 난민이다. 케냐도 5천만 명 중 44만 명이 난민이다.
난민을 막고 총을 쏠 수 있는 국가들이지만 인도적으로 난민 받아들인다. 유엔이 돈을 주니까 난민 받는다고 냉소적으로 얘기하는데 난민이 와서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친척이 와서 한 달만 살아도 불편한 게 사람 아니냐. 아프리카 국가들에는 휴머니즘이 아직 살아 있는 셈이다.
-- 유럽에서는 난민구조선이 결국 난민을 지중해로 보내는 브로커를 돕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 난민 취약성을 이용해 돈을 버는 건 극악무도한 범죄다. 브로커 조직과 NGO가 결탁해 배를 만들고 운영한다면(그렇게 확인된 사례는 물론 없다.) 비난받아야 하지만 바다에 사람이 빠지면 구해야 하지 않겠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난민이 탄 배를 지켜보다 빠지면 구해주는 행위와 빠질 것 같을 때 구해주는 행위다. 후자는 공해 상이라면 문제가 안 되는데 영해에서는 국가가 여론 때문에 못하고 유엔도 못하니까 NGO가 하는 거다.
-- 유엔난민기구도 난민 문제 대응에 한계가 있지 않나. 구호 현장에서는 잡음도 있다.
▲ 유엔난민기구는 전 세계 회원국을 이사진으로 두고 운용되는 거라 독립적 활동범위가 NGO보다 제한적이다. 회원국들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어서 NGO들과 협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하는 것이다.
-- 난민 문제의 근본 해결 방법이 있다면.
▲ 난민을 현상 중심으로 볼 게 아니고 분쟁의 예방, 평화체계 구축, 사회경제적 안정 등 근본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사하라 이남에서 물 부족으로 종족끼리 싸우고 이웃 종족이 끼어들고 하면서 번진 게 남수단 사태다.
NGO들이 국가의 난민 수용 비용 10분의 1로 물 부족 예방했으면 그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에는 평화 안보 노력이 시도됐지만, 르완다 내전 때도 난민을 방지하지 못했다. 시리아 난민 사태를 겪고 진짜로 근본부터 접근하자는 취지에서 안전하고 질서있는 이주를 위한 뉴욕선언이 나오고 글로벌 콤팩트가 추진되고 있다.
mino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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