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기구 '등재 권고' 대상서 빠졌으나 세계유산 등재
우리 정부 설득에 위원국 "7곳 합쳐야 등재기준 충족"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세계유산 자문기구가 어떻게 역사적 가치를 평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봉정사는 통도사와 같은 가치를 지녔습니다. 마곡사와 선암사도 대흥사처럼 9세기 무렵에 창건됐습니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이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하 '한국의 산사')에 대해 짐바브웨 대표단은 이같이 말했다.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를 사전 심사하는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이 신청한 산사 중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를 제외하고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만 등재 권고한 것에 대한 반문이었다.
이코모스는 한국의 산사가 오랫동안 신앙·수도·생활이 어우러진 종합승원으로 기능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를 등재 권고 대상에서 제외한 이유에 대해 역사적 중요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을 제시했다. 봉정사는 다른 사찰 6곳과 비교해 규모가 작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산사 7곳이 이코모스 권고를 뒤집고 모두 등재한 데에는 우리 정부가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전부터 다각도로 기울인 외교적 노력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특히 외교부와 문화재청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이에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21개국은 한국의 산사는 7곳을 한꺼번에 등재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산사 논의에서 첫 발언자로 나선 스페인 대표단은 "한국의 산사는 7곳을 모두 합해야 등재 기준을 충족한다"며 "스페인이 보유한 세계유산인 산티아고 순례길, 안토니 가우디 건축이 한국의 산사와 같은 연속유산인데, 각각 다른 가치를 합친 덕분에 세계유산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대표단 역시 "이코모스가 권고 대상에서 제외한 사찰도 한국 불교의 대표적 모습을 보여준다"며 "7곳을 모두 등재해야 한국 불교가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무형적 가치가 온전히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 대표단은 "본래 이코모스에 동의했으나 한국이 제출한 부속자료를 본 뒤 산사 7곳을 모두 등재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꿨다"고 설명한 뒤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한국의 산사 7곳 등재에 위원국 17개국이 공동 서명하고 20개국이 지지 발언을 하자 이코모스 관계자는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가 나머지 4개 사찰과 비교해 역사성이 약하다는 판단을 했다"며 "연속유산은 각각의 유산이 어떻게 가치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증명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한국의 산사 7곳을 모두 등재해야 한다는 세계유산위원회 분위기에 역행하지 않겠다"며 "이코모스는 연속유산 요소 선정에 대해 별도의 절차 논의와 발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병삼 숙명여대 교수는 "앞서 이코모스는 사상적으로 계율, 화엄, 법상, 선종이라는 네 불교 종파에서 절을 하나씩 고른 것 같다"며 "대흥사, 마곡사, 선암사는 선종에 기반을 두고, 부석사와 봉정사는 화엄신앙을 바탕으로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한 산사 7곳은 모두 사상과 신앙 면에서 1천 년 넘게 전형을 지켰다고 할 수 있다"며 "세계유산위원회가 이 점을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산사 7곳은 7∼9세기 창건됐고, 한때 전쟁이나 화재를 겪기도 했으나 승려와 주민들이 재건을 거듭하며 전통을 계승했다.
등재 권고에서 제외된 사찰을 세계유산에 추가하기 위해 국제무대를 그야말로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닌 문화재청 김지홍 사무관과 임경희 학예연구사는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역사성이 입증된 사찰"이라며 "봉정사의 경우 사찰 규모는 종합승원으로서 가치와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