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미얀마, 소말리아가 상위 5개국
폭력·부패·재난에 떠밀려 '이주민' 대이동도
"남아서 죽느니 떠난다"…"비참하게 사느니 목숨 건 탈출"
(멕시코시티·카이로·이스탄불=연합뉴스) 국기헌 노재현 하채림 특파원 = 쿠사이(33·가명)는 지난 1년간 이스탄불의 좁은 방에서 미국·캐나다대사관의 연락만 기다리며 하루 대부분을 보냈다.
치솟는 실업률에 시리아인에게 돌아올 일자리는 드물었다.
시리아정교회, 즉 기독교 가정의 장남 쿠사이는 번듯한 대학을 나와 시리아 국방부에서 일한 평범한 다마스쿠스 서(西)구타 시민이었다.
내전은 쿠사이의 삶을 비참하게 바꿔 놓았다.
반정부 세력이 장악한 동네에서 도심 사무실을 오가며 직장 생활을 한 쿠사이는 2013년 누군가의 모함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의 악명 높은 정치범 감옥으로 끌려가 3개월간 고초를 겪었다.
혐의가 풀려 복직을 했지만 그의 일상은 감시와 수색의 연속이었다.
간신히 여권을 발급 받고 무급 휴직을 얻은 쿠사이는 2015년 요르단을 거쳐 터키에 입국, '난민' 또는 '이주민'의 삶을 시작했다.
쿠사이가 가끔 만나는 친구 세라즈(가명)는 정부군의 징집을 피해 터키로 왔다. 같은 시리아인끼리 총을 겨누고 싶지 않았다.
쿠사이는 누나가 사는 미국행을 꿈꾸며 3년간 미국정부(미국대사관)의 문을 숱하게 두드렸지만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는 미국으로 가는 문이 더 좁아졌다.
낙심한 쿠사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나라는 캐나다였다.
올해 4월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기 전 연합뉴스 취재진과 만난 쿠사이는 '자신이 난민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동정의 대상이 되기 싫지만, 세라즈도, 나도 난민이 아니면 무엇이겠냐"며 "전쟁만 아니었다면 고향을 떠날 일은 없었다"고 했다.
◇ 난민 3분의 2는 5개 분쟁국서 발생
쿠사이와 세라즈는 한국인이 '중동 난민'을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극단주의 수니파 무슬림도, 반군 조직원도 아니다. 전쟁 때문에 삶의 기반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30대 청년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집계하는 난민(refugees), 국내 피란민(IDPs), 무국적자 등 보호 대상자는 작년 기준으로 약 6천850만명이며, 이 가운데 2천540만명이 난민 범주에 든다.
팔레스타인 난민 약 500만명을 제외한 나머지 난민의 3분의 2는 단 5개국,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미얀마, 소말리아에서 발생했다.
분쟁과 극단주의만 종식돼도 난민 사태의 규모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8년째 계속되는 시리아내전은 무려 600만명에 이르는 난민을 쏟아냈다. 다른 600만명은 시리아 안에서 다른 지역으로 피신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의 테러 위협 등으로 2009년부터 260만명이 넘는 주민이 피란했다.
수단의 서쪽 끝 분쟁지인 다르푸르를 보면 2003년부터 아랍인들로 구성된 중앙정부에 저항하는 부족들의 무장봉기로 약 270만명이 고향을 떠났다.
난민이 북반구 선진국으로 집중된다는 것도 대표적인 오해다.
난민의 85%는 선진국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에, 80%는 출신국 근처 나라에 체류한다.
대표적인 예가 최다 인원 310만∼350만명을 수용한 터키나, 100만여명을 받아 주민 중 난민 비율이 20%가 된 레바논이다.
최근 유럽 각국이 서로 떠넘기며 신경전을 벌이는 지중해 '이주민' 수치도 2015년 102만명에서 작년 17만명으로 줄었고, 올해 반년 동안도 4만5천명으로 더욱 줄었다.
◇ "난민도 버거운데 이민자까지"…반난민 정치집단 득세
국제기구가 제시하는 이러한 '팩트'에도 선진국 일반 대중이 느끼는 '이주민 사태'의 위협은 훨씬 더 심각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난민뿐만 아니라 빈곤 탈출을 꿈꾸는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자국의 일자리와 복지를 잠식하고, 지역사회의 오랜 전통과 문화를 파괴한다는 불만과 공포가 비등하다. 그 결과가 반난민 정서를 표방한 정치세력의 득세다.
국제이주기구(IOM)의 '세계 이주 보고서 2018'에 수록된 유럽연합(EU) 국경 경비기구 '프론텍스'의 추정치를 보면 EU 내 '불법 이민자'는 2008년에 이미 800만명으로 추정됐다. 미국 내 불법 이민자는 2015년 기준 1천130만명에 이른다.
이런 여론이 반영돼 최근 유럽 정치인과 언론은 '난민'이라는 인도주의적 용어보다는 '이주민'이라는 가치 중립적 용어로 갈아탔다.
실제로 북아프리카 '난민선' 탑승자와 미국 밀입국자 가운데는 분쟁이나 폭력, 박해 같은 긴급한 생명의 위험 때문이 아니라 가난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소말리아, 케냐, 남수단 등 다수 아프리카국가에서는 식량 위기를 부르는 가뭄 등 환경 재난도 탈출 행렬을 부추기는 주원인으로 부상했다.
중남미 주민들은 살해 위협, 폭력, 실업, 생활고 등 사회·경제적 이유로 조국을 등지고 있다.
유엔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약 100만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기아와 실업, 유행병 확산 등을 못 이겨 모국을 떠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IOM)의 추산치는 160만 명이다.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 국가 출신은 주로 정부의 부패, 가난과 범죄 위협 등과 같은 사회적인 이유로 고국을 떠났다. 2011년 1만8천 명에서 지난해 29만4천명으로, 6년 새 16배 늘었다.
물론 빈곤의 근원에는 뿌리 깊은 분쟁과 부패가 도사리고 있고, 주민들은 언제든 정정불안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불안에 고향땅을 떠난다. 이들을 단순히 경제적 목적의 불법 이민자로만 보기도 어렵다.
◇ "비참하게 사느니"…목숨 건 탈출
고향에 남는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아프리카인과 중남미인들은 지중해의 거친 파도와 미국 국경 단속에도 서유럽이나 미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이주민들은 뱃길에 오르기도 전에 인신매매, 강제노동, 폭행, 성적 학대 등 착취의 덫을 빠져나가야 한다.
작년 말 미국 CNN방송을 통해 아프리카 난민 남성들이 리비아에서 노예로 매매되는 영상이 공개돼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다.
아프리카연합(AU)은 리비아에서 40만~70만 명의 난민이 캠프에 구금돼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은 리비아에 도착하기 전부터 세계 최대의 사막에서부터 사투를 벌여야 한다.
니제르의 오아시스 도시 아가데즈에서 사하라 사막을 건너 리비아 국경까지 약 750㎞를 이동하는데 아슬아슬한 여정이 계속된다.
소총으로 무장한 강도를 만날 수 있고 차 고장으로 사막에서 멈추는 일이 발생하면 물 부족 등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1996년부터 사하라 사막에서 난민이 1천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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