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못참아"…부정부패에 분노한 멕시코 민심은 변화를 택했다

입력 2018-07-02 10:40  

"더는 못참아"…부정부패에 분노한 멕시코 민심은 변화를 택했다
현 대통령 부부 재임 내내 부패 의혹…부·권력 대물림에 민심 이반
빈곤 심화·마약범죄 등 치안불안·경제 침체도 정권교체 이끌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1일(현지시간) 치러진 멕시코 대선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가 승리한 데는 변화를 갈망한 멕시코의 민심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보수 우파 진영의 장기집권 속에 곪아 터진 기득권층의 부정부패, 불평등 확대,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범죄, 경제 침체에 분노한 민심이 표출된 것이다.
중도우파 성향의 제도혁명당(PRI)은 과거 89년 중 77년간 집권당으로 군림하면서 멕시코에 만연한 '부정부패의 온실' 역할을 해왔다.
대선 등 주요 선거 때마다 장기집권을 통해 확보한 막대한 자금과 광범위한 인맥을 동원하거나, 때로는 개표 부정 등을 통해 정권을 연장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보수 야당인 국민행동당(PAN)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2년간 집권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기에 부족한 보수 우파 진영 간의 정권교체에 불과했다.
우파 보수 진영의 오랜 집권은 부정부패라는 지배 기득권층의 일탈로 이어졌다. 암처럼 사회 곳곳에 파고든 부정부패는 불평등, 폭력, 사회 붕괴, 도덕적 해이를 야기했고 궁극적으로 국가 경제를 좀먹었다.
멕시코는 서구 선진사회처럼 능력에 따른 기회가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아 '희망의 사다리'가 거의 없는 국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멕시코의 절대 빈곤 인구는 전체의 약 40%에 달한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이 가능한 멕시코에서 영세민 가정에서 태어나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빈곤에서 벗어날 확률이 희박하다.
좌파 모레나 당이 이번 대선에 임하면서 멕시코가 직면한 문제들의 근원을 부정부패로 진단하고 반부패 전쟁, 빈곤퇴치, 치안회복, 재정 건전화, 양성평등 및 지속 가능한 발전 등 5대 핵심과제를 제시한 것은 이런 멕시코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렸다.
암로는 기회가 날 때마다 '권력 마피아'층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낭비 요소를 줄여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복지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밝혀왔다.

멕시코 국민의 분노를 키운 것은 권력의 핵심 세력이었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 부부는 재임 기간 내내 부패 스캔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영리단체인 '부패와 면책에 반대하는 멕시코인들'은 지난해 10월 니에토 대통령의 선거본부 고위 관계자가 2012년 대선 당시 브라질 건설사인 오데브레시 관계자를 만나 314만 달러(약 35억5천만 원)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니에토 대통령은 부인 앙헬리카 리베라 여사가 연루된 잇단 부패 의혹 등으로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최저 수준인 20%대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리베라는 니에토 대통령이 멕시코 주지사로 재직하던 2012년 1월 700만 달러(약 79억 원)에 달하는 고가 주택을 관급공사를 많이 수주한 업체의 담보를 토대로 부정하게 취득한 사실이 2014년 11월 현지언론을 통해 폭로된 바 있다.
2016년 8월에는 관급 입찰을 준비 중인 업체가 소유한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 있는 205만 달러(약 22억7천만 원)짜리 호화 아파트를 리베라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부정부패 스캔들은 대통령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현재 PRI 소속 주지사로 활동하다가 부패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7명이 국내외에서 복역 중이다.

만연한 살인 범죄와 폭력도 변화에 대한 갈망을 키웠다.
비영리단체인 경제평화연구소가 지난 4월 발표한 '2018 멕시코 평화지수'를 보면 지난해 폭력범죄로 인해 발생한 비용은 2천490억 달러(약 265조9천320억 원)로 집계됐다. 폭력범죄가 유발한 손실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할 정도다.
멕시코에서는 2006년부터 마약 갱단과의 전쟁에 군이 투입된 이후 20만 명 이상이 숨졌다.
살인은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멕시코 당국에 보고된 살인사건은 전년보다 18.91% 늘어난 2만5천339건으로,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7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올해 들어 5월까지 보고된 살인사건은 전년 동기에 견줘 21% 늘어난 1만3천298건에 달했다.
특히 5월 한 달 동안 무려 2천890명이 살해돼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87년 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하루에 93명이 숨지고 시간당 4명이 목숨을 잃은 셈이다.
위험 분석 컨설팅회사인 에텔렉트에 따르면 선거 후보 등록이 시작된 작년 9월부터 올해 6월 25일까지 멕시코 정치인을 상대로 자행된 공격은 543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위협과 협박을 받은 정치인은 179명이며, 이 중 120명은 입후보자였다. 피살자는 133명이며, 이 가운데 48명이 선거 출마자였다. 피살된 후보자의 대부분은 소규모 도시 시장이나 지방의회의 입후보자들이다.
2006년 이후 멕시코에서 피살된 시장과 시장 당선자는 60명에 달한다. 대부분 지역 내 통제권과 이권을 노린 마약 갱단 등 범죄 조직의 손에 희생됐다.
암로는 갱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단순 마약범죄 조직원을 사면한다는 구상이다. 희망이 없는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마약범죄조직으로 흘러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와 타협하려 한다는 보수층의 비판여론도 만만치 않다.
경제 부진도 정권교체를 이끈 요인이다. 지난해 중남미 2위 경제 대국인 멕시코의 경제성장률은 2.1%에 그쳤다. 감소세를 보여온 국영 석유 기업 페멕스의 원유 생산량이 지난 2월 1990년 이래 처음으로 하루 200만 배럴 이하로 떨어졌다.
니에토 대통령이 취임했던 2012년 달러당 13페소 선에서 움직였던 페소화 가치는 최근 들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ㆍ나프타) 재개정 협상의 불확실성 등으로 20페소 안팎으로 하락했다.
penpia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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