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 10만부 돌파…신작 '내게 무해한 사람'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2016년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로 침체한 문학계에서 10만 부 돌파라는 놀라운 기록을 쓴 작가 최은영(34)이 2년 만에 새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으로 돌아왔다.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한 이 젊은 작가는 김연수 작가로부터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소설을 쓰는 작가", 김영하 작가로부터는 "재능 있는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소설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간결하면서도 탄탄한 문장에 인간 삶과 관계를 진지하고 치열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이 반짝이는 그의 첫 작품집은 신인 작가의 낮은 인지도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의 마음을 두드렸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7편 소설은 사람들이 지닌 겹겹의 마음과 표정을 더 섬세하게 그려낸다. 인생에서 가장 여린 시절인 10대와 20대를 돌아보는 이야기들은 그 시절을 애틋하게 기억하는 많은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킬 만하다.
제목인 '내게 무해한 사람'은 수록작 '고백'에서 나왔다.
"진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을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볼펜을 이리저리 돌릴 때 미주는 자신이 진희를 안다고 생각했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러나 이 소설 속 미주는 '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친구 진희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고백하자 그 앞에서 혐오의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진희는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다른 수록작 '손길'에서는 주인공 화자를 어린 시절 키워준 숙모가 전라도 여자이고 아이를 못 낳았다는 이유 등으로 집안에서 온갖 혐오와 비난의 말을 듣는다.
"어른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같이 증오할 사람 하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숙모와 제대로 대화 한번 해본 적 없으면서, 숙모가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삼촌이랑 얼마나 즐겁게 사는지 보고도 못 본 척 하면서 숙모가 삼촌 인생을 망쳤다고 했다." (222쪽)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어린 시절의 미숙함으로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학습된 편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소설 속 어른들은 자식들에게까지 혐오와 차별을 서슴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생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에 완전히 무해한 사람은 없겠죠.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게 기본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상처를 주는 상황이 많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어떤 정체성 때문에, 학력이나 출신 지역에 따라, 살이 쪘다거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바꿀 수도 없는 특성을 두고 모두가 상처를 주는 상황이에요. 한국이 특히 심한 것 같아요."
이번 소설집에서는 중심인물이 모두 여성인 점도 두드러진다. 여성들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우정, 연대, 미움과 상처를 이야기한다. '601, 602'에서는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여자아이가 집안에서 모질게 학대당하는 풍경이 섬뜩하게 묘사된다. 오빠가 여동생을 잔인하게 때리는 모습을 보고도 부모는 수수방관하며 아들을 편든다.
"저도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여자로 살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면서 살았어요. 대학교에서 여성주의 교지를 만드는 데 참여했는데, 그걸 시작할 때도 '나는 여성주의자가 아니야, 휴머니스트야' 그랬죠. 그런데 점점 그게 헛소리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나는 그냥 그들의 프레임 안에서 여자로 인식될 뿐이고, 두세 배 더 열심히 해야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걸 겨우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일들을 적어보니 한 100가지가 나오더군요. 특히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확실하게 알게 된 건 결혼하고 나서였어요. 결혼한 여자에게 기대되는 것들이 나를 소외시키는 걸 경험하면서 분개했고, 그러면서 더 차별에 민감해진 것 같아요."
그는 여자아이로서 인정받기 위해 늘 아등바등 애쓴 삶이 한편으론 스스로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게 스스로 다그치며 산 이들의 메마른 마음을 다독거리는 문장도 이 책에는 많다.
<YNAPHOTO path='PYH2018070221600001300_P2.jpg' id='PYH20180702216000013' title=''믿고 보는 소설가' 최은영' caption='(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소설가 최은영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jin90@yna.co.kr' />
"어린 나는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더 착한 아이가 되면, 훌륭한 아이가 되어 민폐 그 자체인 내 존재에 대한 빚을 갚을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부모가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나를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고 인정하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었다. (…)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121쪽, '모래로 지은 집' 중)
"돌아보면 제가 저 자신에게 너무 표독스럽고 엄격했던 것 같아요. 환경 탓, 다른 사람 탓 하지 말고 무조건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컸어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무조건 잘 할 수 있겠어요. 넘어진 사람한테 왜 넘어졌냐고 화를 내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소설을 쓰며 쾌감을 느낀 뒤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소설을 제대로 쓰게 된 건 20대 후반부터라고 했다. 등단도 비교적 빨랐고 첫 소설집으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저는 엄청난 글을 한 번에 잘 쓰는 타고난 재능은 없어요. 저 정도 쓰는 작가들은 많지요. 다만, 이제는 그 재능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반짝거리는 글을 쓰지 않더라도 자신의 굴욕적인 삶을 매일매일 쓰면서 그걸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아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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