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인천 민속조사 보고서 4종 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연평도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조기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에 꽃게 어획량이 크게 늘었죠. 연평도에서 잡히는 꽃게 양은 알려진 수치보다 훨씬 많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연평도에 상주하며 민속조사를 한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3일 '2019년 인천 민속문화의 해'를 앞두고 박물관이 마련한 간담회에서 연평도가 '조기의 섬'에서 '꽃게의 섬'으로 바뀐 과정을 설명했다.
민속박물관은 2007년부터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지역 민속문화의 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맺은 뒤 지역 정체성을 보여주는 마을을 선정해 장기 조사를 한다. 이어 연구 성과는 두툼한 보고서로 발간하고, 특별전도 연다.
인천에서는 기존보다 조사 지역을 확대해 연평도와 강화도, 공단 지역을 연구하고 민속지 6권을 펴냈다. 또 5권 내외로 발행했던 주제별 보고서 종수를 늘려 6권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은 지역이 바로 연평도. 면적이 7㎢를 조금 넘는 연평도는 인천광역시에 속하지만, 거리상 황해도가 훨씬 가깝다.
흥미로운 사실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연평도 정의에 '조기잡이가 유명하다'는 문장이 있지만, 실상 조기는 씨가 말랐다는 점이다.
김창일 연구사는 "과거에는 조기가 남중국해에서 제주도, 흑산도, 위도를 거쳐 연평도까지 올라왔다"며 "1960년대 한강이 오염되고 북한 황해도 해안에서 모래를 채취하면서 조기 산란지가 훼손됐다"고 말했다.
이어 "배가 동력선으로 바뀌고, 그물 소재도 면에서 나일론으로 변경되면서 어부들이 조기를 남획했다"며 "조기 어획량이 감소하자 조기 파시(波市)도 맥이 끊겼다"고 덧붙였다.
연평도에서 조기잡이의 대안으로 등장한 산업은 김 양식업과 꽃게잡이다. 특히 꽃게는 1980년대 수요가 늘고 냉동시설이 보급되면서 어획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김 연구사는 "꽃게 조업 성과는 위판 실적이고, 개인 매매는 포함하지 않는다"며 "선주는 친구 사이에도 실제 어획량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전체 어획량은 알 수 없지만, 위판 실적에 50∼60% 정도를 더한 수치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평도 꽃게잡이 선주와 선원은 외지인이 다수"라며 "주민들은 갯벌에서 굴, 낙지를 잡아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평도 주민은 피란민과 토착민이 섞여 있고, 군인도 많다"며 "연평도에서는 군사적 이유로 해가 하늘에 떠 있을 때만 고기잡이를 할 수 있고 어장도 한정됐으나, 그 대신 군인들이 주민을 위해 봉사 활동을 많이 한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이 민속조사를 한 또 다른 지역은 강화도 선두포(船頭浦)다. 이곳은 미국 예일대 교수를 지낸 인류학자 코넬리우스 오스굿(1905∼1985)이 1947년 7월 7일부터 9월 1일까지 민속조사를 벌였던 장소다.
우승하 학예연구사는 "70년 만에 다시 선두포에서 역사, 의식주, 종교생활, 의례를 조사하고 기록했다"며 "오스굿이 수집한 살림살이를 토대로 세 가구를 선정해 생활 변화상을 추적했다"고 말했다.
대도시 인천의 모습은 공단 노동자 생활문화로 조명했다. 안정윤 학예연구사는 조사 과정에 대해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인천을 지탱한 산업을 분석하고, 노동자를 만나 대화를 나눈 뒤 다양한 물품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또 인천 지역에 남은 일제강점기 정미소, 양조장, 공장, 노동자 사택을 조사하고 현황을 기록으로 남겼다.
민속지와 함께 발간한 주제별 보고서는 인천 지역 전문가들이 서술했다. 주제는 간척과 도시개발,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부평에 새긴 노동의 시간, 미군기지와 양키시장, 인천역, 연안에서 잡히는 어종과 특징이다.
이관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은 "인천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공간과 시설이 많은 도시"라며 "내년에 인천 특별전을 열고, 인천 시내에 마을박물관을 만들어 연구 성과를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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