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거 장관, 문재인 대통령 예방·DMZ 방문 등 4~9일 방한
"화해 물꼬 튼 남북·북미, 이제 실질적인 관계 진전 이뤄야"
"교황, 한반도 화해 기여할 기회 주어지면 진지하게 검토할 것"
(바티칸시티=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지난 몇 달간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이 숨 가쁘게 전개되며 한반도가 오랜 긴장에서 벗어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을 적극 지지합니다. 이제 남한과 북한은 실질적인 관계 개선을 위해 살과 뼈를 붙여나가길 바랍니다."
폴 리처드 갤러거(64) 교황청 외무장관(대주교)은 2일 저녁(현지시간) 최근의 남북 관계 진전에 환영을 표하고, 남북 화해와 평화정착 과정에서 교황청이 기여할 기회가 주어지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초청으로 4일 방한하는 갤러거 외무장관은 출국을 앞두고 바티칸 사도궁 외교부 접견실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한국 방문을 앞둔 소회와 최근 몇 달 새 급변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또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난민 문제, 양심적 병역 거부 등에 대한 생각도 내비쳤다.
영국 출신의 갤러거 대주교는 교황청의 부룬디 대사, 과테말라 대사, 호주 대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출신으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교황청 외교 수장으로 임명됐다.
1997년, 1998년 등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한국에 가는 것은 처음이라는 그는 "한반도가 중요한 국면에 처한 시점에 한국에 가게 됐다"며 방한을 앞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오는 9일까지 이어지는 방한 기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함께 비무장지대(DMZ)와 판문점을 둘러본다. 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면담하고, 천주교회 현장을 방문하고 교회 관계자들과 회동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다음은 갤러거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 첫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다. 한반도와의 지금까지의 인연은.
▲ 한국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북한은 20여 년 전에 두 차례 갔었다. 북한에 기근이 들었을 때라, 인도적 지원 협의를 위해 교황청 외무차관을 수행하고 1997년, 1998년에 연달아 북한에 갔었다. 당시 북한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매우 엄격하고, 규율이 잡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시스템을 가진 나라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이었다.
-- 이번 방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 및 비무장지대(DMZ), 판문점 등 남북 분단의 상징적인 장소 방문 일정 등이 잡혀 있는데.
▲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남북 관계에 대한 전망을 묻고,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견을 듣는 등 깊은 대화를 나누길 기대한다. 역사의 울림이 있는 곳인 DMZ에 걸음을 하게 된 것도 뜻깊게 생각한다. DMZ는 인류의 비극을 축약해 보여주는 곳이자, 오늘날 세계가 처한 평화의 허약성을 드러내고, 인류가 처한 위험성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 최근 한반도 정세가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을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정착 가능성에 긍정적인가.
▲ 교회는 항상 서로 다른 나라와 사람들, 종교, 문화 사이의 대화를 지지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가톨릭 교회의 철학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이질적인 존재 사이의 화합과 통합 증진은 평화와 안보를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이) 정상 회담을 통해 화해의 물꼬를 텄으니 이제 상징적인 차원에 그치지 말고, 살과 뼈를 붙여나가면서 (관계 회복에 있어)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야 한다. 기독교는 긍정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지만, 모든 희망은 '리얼리즘'의 뒷받침을 받아야 의미가 있다. 실질적인 진전을 거두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정치적 의지가 있으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
-- 북한은 가톨릭 국가에는 몇 남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북한 복음화 가능성에 대한 교황청의 전망은.
▲ 교황청은 모든 사람, 모든 나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에 가톨릭 공동체가 번성하고 있었고, 평양 교구 주교들의 이름이 수년 동안 교황청이 발행하는 출판물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 당장은 북한과 교황청 사이에 정식 관계가 없지만, 교황청이 평양 대주교를 여전히 임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과 북한 주민에 대한 교황청의 일관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 각국에 실핏줄처럼 퍼져 있는 교회 조직을 갖추고 있는 교황청은 전 세계에서 정보 수집 능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현재 북한과의 공식·비공식 채널이 있는지.
▲ 현재로서는 공식 채널은 없다. 하지만 2014년까지만 하더라도 로마에 상주하는 북한대사관 인사들과 교류하는 등 간헐적으로 북한 측을 만나왔다. 카리타스 등 가톨릭 자선단체 등을 통한 비공식 채널은 존재한다. 또, 한국 가톨릭의 주교들도 최근까지 북한과 접촉해 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쩍 외교적 반경을 넓히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만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북한으로 전격 초청하는 등 북한과 국제사회의 중재를 요청하는 손을 내민다면 교황청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 일단 아직 북한으로부터의 초청은 없었다. 북한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요청한다면, 교황청은 당연히 상황을 살피고,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다. 초청의 의도가 무엇인지 따지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한반도 화해와 세계평화를 위해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북한 방문을 매우 진지하게 검토할 것으로 본다. 1960년대 초반 전개된 쿠바 미사일 위기 때 교황 요한 23세가 미국과 소련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듯 평화를 촉진하는 것은 교황청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다.
-- 전 세계가 난민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 사회도 현재 제주도에 들어와 있는 예멘 난민 수용을 놓고 심각한 여론 분열을 겪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쟁과 기아를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난 난민들을 환영하라는 가르침을 견지하고 있지만, 지구촌 전체가 결부된 난민 문제는 갈수록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는 양상이다. 이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은.
▲ 난민 문제가 논란의 소지가 큰 이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문화와 전통, 역사가 상이한 나라에 들어온 난민을 그 사회에 통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난민 문제는 일부 국가에만 국한된 게 아닌, 전 지구적인 사안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협약이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당사자가 제 역할을 하면서, 국제 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
난민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맞서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윤리적인 측면에서다. 난민들의 고통은 실재하고 있으며, 인간적인 고통에 대해 우리는 응당 반응을 해야 한다. 두번째는 실제적인 측면에서다. 대다수의 난민이 개발도상국의 분쟁과 전쟁 등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고, 이것은 금방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합의와 공동 대처가 필요하다.
-- 한국 사회에서는 요즘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 거부 등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에 대한 교황청은 입장은.
▲ 한국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교회의 원칙은 매우 명확하다. 교회는 사형제 폐지를 지지한다. 폐지가 어려우면 사형제 집행 중단 공식 선언이라도 하길 바란다.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해서는 한국 교회가 대체 복무제 등에 관한 국제적 논의에 활발히 참여해 바람직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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