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크로아티아 대표팀 수문장 다니옐 수바시치(34)는 지난 2일 열린 덴마크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축구대회 16강전의 영웅이었다.
그는 연장전까지 1-1로 마친 뒤 돌입한 승부차기에서 덴마크의 다섯 번째 키커 니콜라이 예르겐센이 가운데로 찬 슈팅을 발을 뻗어 막았다.
이날 승부차기에서만 세 번째 선방이었다.
크로아티아는 수바시치의 신들린 선방에 힘입어 승부차기에서 3-2로 승리하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3위) 이후 20년 만에 8강 티켓을 손에 넣었다.
승리를 만끽하며 유니폼을 벗은 수바시치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가 유니폼 안에 입은 티셔츠에는 한 명의 사진과 'FOREVER'라는 문구, 그리고 '24'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10년 전에 숨진 그의 친구 흐르비제 세스티크(1983∼2008)다.
AP통신에 따르면 수바시치는 4일 러시아 소치에서 개최국 러시아와 8강전을 앞두고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사진 속 주인공을 묻자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그 친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다들 잘 알 것이다. 내가 추가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세스티크는 2008년 경기 도중 볼 다툼을 하다가 옆줄 쪽에 설치된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쳤다. 그는 사고 이후 며칠 뒤 숨을 거뒀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부터 세스티크와 함께 뛰어온 수바시치는 큰 슬픔에 잠겼다.
수바시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친구를 기렸다.
친구의 사진과 그의 만 나이인 24, 그리고 영원히 함께 뛰겠다는 의미로 'FOREVER'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매 경기 입고 나서기 시작했다.
언제나 친구를 가슴에 안고 뛰어온 수바시치는 이번 월드컵 16강전 승리를 죽은 친구에게 바쳤다.
팀 동료들도 그런 수바시치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크로아티아 수비수인 도마고이 비다는 "수바시치는 엄청나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다. 또한, 언제나 열정적"이라고 말했다.
수바시치는 승부차기에서 상대의 첫 번째 키커로 나선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슈팅을 막아내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즐라트코 달리치 크로아티아 감독은 "승부차기는 항상 도박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모른다. 골키퍼가 공을 차는 방향을 정확하게 읽기도 하고, 때로는 키커가 실축한다. 정해진 규칙도 없고, 운이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기 마련이다. 이번만큼은 운이 많이 따랐다"며 "수바시치가 정말로 필요할 때 우리를 도와줬고, 그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수바시치는 이번 월드컵에서 주목받는 골키퍼는 아니었다.
심지어 16강전에서 승리를 이끌었지만, 경기 최우수선수 격인 맨 오브 더 매치(MOM)에는 덴마크 골키퍼 카스페르 슈마이켈이 선정됐다.
비록 MOM을 놓쳤지만, 현재 프랑스 리그1 AS모나코에서 뛰는 수바시치는 이번 대회가 끝난 뒤 유럽 빅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바시치는 "팀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어서 기쁘지만, 축구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이라며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 모두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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