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갓 태어난 아기들은 물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목 안쪽을 닫고 팔다리를 휘젓는 기본 동작을 한다."
이렇게 아기가 수영 능력을 타고난다는 사실은 아기를 키워보면 쉽게 확인한다. 신생아 때부터 시작해 아이들은 물놀이와 수영을 유난히 좋아하는데, 이런 본능에 가까워 보이는 행동은 태아가 엄마 양수 속에서 열 달간 수중 생활을 했기 때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 인간과 포유류는 생식을 몸 안의 수생환경에서 하는 방식으로 하게 됐을까?
신간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이케이북)의 저자 에릭 샬린은 수영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수백만 년 전 진화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생아의 수영 실력을 "우리가 수생환경에서 살았던 시절의 유물일까?"라는 질문과 연결짓는 것이다.
저자는 현역 수영 코치이자 체육 연구자인데, 이 책에서는 진화론 여러 가설 중 일레인 모건의 '수생 유인원 가설'을 비중 있게 소개한다. 이 가설은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수생기'를 거쳤다는 주장이다. 특히 두 발로 서서 걷는 이족보행과 털이 없어진 형태는 육지 생활에서는 이로울 게 없고 수생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 주요 근거다.
"이족보행은 호미닌(사람족의 구성원으로, 현생인류와 그 조상 그룹) 진화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족보행이 먼저 나타나서 해부학적·행동적 변화의 물결을 촉발했을 거라는 데 동의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호미닌 이동 방식의 주된 유형이 된 건지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아직 없다. 모건은 이족보행이 확실한 이점이 되는 환경이 하나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물이다." (35쪽)
몸을 덮은 체모 역시 열기와 추위, 자외선에 대한 1차 방어막이자, 유인원 새끼들이 어미 털을 잡고 매달릴 수 있어 어미의 활동이 훨씬 자유로워진다는 장점이 있는데도 사라진 이유가 의문으로 남는다. "인간은 아기가 쉽게 매달릴 수 있는 체모가 없기 때문에 아기를 안아야만 하는 유일한 영장류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체모가 없어진 것이 진화적으로 꽤 큰 단점이 된다." 이 체모가 없어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수생환경이다.
"물속에서 그들은 수영과 잠수를 통해 식량을 발견하고, 그러면서 손으로 물건을 정확하게 잡는 법을 더 발전시켰을 것이며, 걷고 수영하는 데 사용되던 발은 물건을 잡는 능력을 잃고 육지나 얕은 물속을 걸을 때 더 안정적이고 수영할 때 더 큰 추진력을 줄 수 있게 길고 평평한 구조로 진화했을 것이다." (36∼37쪽)
저자는 이것이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고 전제하며, 다만 독자들이 물과 인간의 관계를 해석하는 데 참고할 만한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또 이 책에서 "네 가지 원소 중에서 물만이 우리를 기꺼이 환영하고 그 액상의 품으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새처럼 공기 속을 날아오르지 못하고, 두더지처럼 흙 속을 파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샐러맨더(상상 속의 불도마뱀)처럼 불을 뚫고 지나가지도 못하지만,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는 있다"며 수중환경의 특별함을 강조한다.
"수영은 물의 저항력에 팔을 젓는 힘을 적용해서 물을 이동시키는 역학 이상의 행동이다. 수영은 우리에게 육체적·정신적·영적인 행복이라는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6쪽)
인류 문명이 시작되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유역과 중국 등지에 나타난 도시문명이 강 유역에서 융성했고, 인간이 바다로 나아가면서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같은 위대한 해상 제국을 건립한 것도 인간에게 수영 기술이 중요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현대에 이르러 잠수를 돕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하면서 수영과 다이빙은 인간의 생활과 문화에 더 깊숙이 들어오게 된다.
영국에서 작년에 출간된 이 책은 물과 문명, 수영의 역사라는 흔치 않은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김지원 옮김. 43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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