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표 자금 유용 관련…살비니 '동맹' 대표 "정치적 판결" 반발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강경 난민정책을 앞세워 최근 들어 지지세를 급격히 불리고 있는 이탈리아 극우정당 '동맹'이 암초를 만났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지난 3일 '동맹' 전 대표가 공적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건과 관련, 하급 법원이 판결한 국가보조금 4천900만 유로(약 641억원) 반환을 완료할 때까지 현금과 예금을 포함한 이 정당의 모든 형태의 자산을 전면 압류하라고 판결했다.
동맹의 전신인 '북부동맹'의 창립자이자 전 대표인 움베르토 보씨와 그의 아들 렌초 보씨는 작년 7월 1심 법원에서 횡령 혐의가 인정돼 각각 징역 2년 3개월, 징역 18개월을 선고받았다.
국고에서 지원한 당비를 자신과 가족을 위해 쓴 의혹이 제기돼 2012년 당 대표직에서 사퇴한 보씨 전 대표는 20만 유로 이상을 사적인 여행과 식사, 고급 차 구입 등에 쓴 혐의를 받아왔다.
당시 1심 법원은 북부동맹의 전 회계담당자인 프란체스코 벨시토도 착복 혐의로 2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하고, 이들의 유용이 일어난 기간인 2008∼2010년 이 정당에 지급된 국고보조금 4천900만 유로 반환도 명령했다.
보씨 전 대표 등은 혐의를 계속 부인하며 항소했고, 1심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혔으나, 대법원은 다시 보씨 전 대표 등의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의 이런 판결에는 동맹이 압류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1심 판결 이후 현재까지 동결된 동맹의 자산은 180만 유로(약 23억5천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번 판결로 사실상 손발이 묶이게 된 '동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며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탈리아 정당을 사법적 수단을 이용, 쓰러뜨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전례가 없는 판결"이라며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동맹의 대표인 살비니 내무장관도 4일 "법원이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그러나 "동맹에 타격을 가하려는 '거대한 음모'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전 대표가 연루된 이번 판결에 대한 확대 해석은 경계했다.
살비니 장관은 보씨의 당 자금 유용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2013년 그에게서 당 대표를 이어받은 뒤 부유한 북부에 국한돼 있던 당의 지지세를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당명에서 '북부'를 뗐고, 이는 당의 지지율 급등으로 이어진 바 있다.
한편, 5일 일 메사제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동맹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이번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할 예정이다.
동맹 측은 리투아니아 방문 중인 대통령이 돌아오는 즉시 면담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알려지자 이탈리아 법관연합회(ANM)는 즉각 우려를 표명했다.
ANM은 "판사들은 민주주의나 헌법을 공격하는 판결을 내리지 않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을 추구하지도 않는다"며 "법원의 판결에 국가 수반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은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맹과의 포퓰리즘 연정을 주도하고 있는 오성운동의 대표인 루이지 디 마이오 노동산업장관 겸 부총리는 이번 판결에 대해 "과거의 일"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판결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총선에서 반(反)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17.4%를 득표해 약진한 동맹은 32%를 웃도는 표를 얻은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연립정부를 구성, 정권의 한 축이 됐다.
정부 출범 이후에는 난민 강경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살비니 내무장관이 두드러진 존재감을 드러낸 덕분에 지지율이 30% 초반으로 수직 상승,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오성운동을 따돌리고 지지율 선두로 올라섰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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