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나치 대학살 다룬 9시간 30분짜리 대작 '쇼아'로 세계적 명성
레지스탕스 투사·작가…사르트르 친구이자 보부아르의 연인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에 관한 걸작으로 꼽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쇼아'(Shoah·1985)를 연출한 프랑스 영화감독 겸 작가 클로드 란즈만이 5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92세.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는 란즈만이 이날 오전 파리의 자택에서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란즈만은 1985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쇼아'(히브리어로 '대말살'이라는 뜻)를 12년간의 오랜 제작 기간을 거친 뒤 공개해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생존자들의 증언만으로 오롯이 9시간 30분을 채운 대작인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의 나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과 목격자·증인·가해자 등의 인터뷰 위주로 진행된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차분한 톤과 직접 현장을 겪은 인물들의 생생한 진술로 인간의 잔악성과 악의 평범성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개봉 이후 홀로코스트에 관한 가장 중요한 영상기록물로 지금까지도 극찬을 받고 있다.
일간 르몽드는 "란즈만을 얘기할 때 단 하나의 영화를 꼽는다면 유감이지만, 걸작인 '쇼아'를 꼽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란즈만은 2013년 베를린영화제 초청 당시 "쇼아를 제작하는 12년 동안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나를 이끈 동력 중 하나는 이 영화로 인해 독일인들이 진정으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란즈만은 작년에는 1950년대 후반 북한 여성과 자신의 로맨스를 소재로 '네이팜'을 칸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1958년 다큐멘터리 촬영차 유럽 방북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에 갔던 란즈만은 적십자병원의 한 간호사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이를 소재로 다큐 영화를 만들었다.
지난주에는 란즈만이 연출한 다큐영화 '네 자매'가 프랑스에서 개봉했는데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됐다.
란즈만은 다큐 영화감독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이전에 레지스탕스 전사이자 작가였다.
그는 프랑스의 해방 전후 시기 실존주의 철학의 거장 장 폴 사르트르의 친구였고, '제2의 성'을 쓴 작가이자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전 비서이자 연인이었다.
몇 년 전에는 보부아르가 자신보다 열여덟 살 어린 비서였던 란즈만에게 보낸 절절한 내용의 연애편지들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대계 프랑스인인 란즈만은 2차대전 나치 점령 시기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동한 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해방 직후 창간한 시사문예지 '현대'(Le temps moderne)에서 일했다.
연인이자 동료였던 보부아르가 1986년 타계한 뒤에는 그의 뒤를 이어 '현대'(갈리마르 출판사 간행)의 편집인을 타계하기까지 30년 넘게 맡아왔다.
란즈만은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영화 연출과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치열한 지성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작년 프랑스 공영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내가 멈출 수 없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믿는 그 진실들 때문일 것이다. 삶을 돌아보건대 그것은 진실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고, 나는 결코 그 진실을 가벼이 여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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