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파 무역학도, 스마트팜으로 '농업' 가계 잇다

입력 2018-07-06 15:20  

유학파 무역학도, 스마트팜으로 '농업' 가계 잇다
태곡농원 노규석 씨 등…'귀농 콘퍼런스'서 경험담 공유
"과거 데이터 이용해 미래 준비…강력한 과학적 가이드라인"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옛날에는 '보름달이 뜨면 이리이리 하라'고 아주 추상적인 경험으로 농사했죠. 하지만 이제는 과학적 데이터를 토대로 한 '수치'라는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강력한 스마트팜의 이점이에요."
경남 합천 '태곡농원'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노규석(37)씨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열린 '2018 대한민국 귀농귀촌 박람회 - 귀농 콘퍼런스'에서 스마트팜의 장점으로 통계에 기반을 둔 체계적인 농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
노씨는 "파프리카나 토마토를 키우려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정보가 필요하다. 상황에 따른 조치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우리 농장은 해발 800m에 자리하고 있어 (일반 농장과는) 관리가 달라야 하는데 스마트팜을 들여오면서 걱정을 많이 줄였다"고 말했다.
이어 "파프리카 어떤 품종은 야간에 온도를 몇 도로 맞춰야 하는지, 특정 습도에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 재배 방법이 많이 연구돼 있다"며 "이 수치를 참고해서 시스템에 세팅 값을 입력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노씨는 2014년 영국 런던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무역 컨설턴트로 일하던 독특한 경력이 있다. 2015년 경남 합천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농장을 이어받은 이래 지금껏 태곡농원을 운영 중이다.
그는 그러나 아버지의 농장을 그대로 물려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낡은 시설을 완전히 뜯어고쳐 첨단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팜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농장 내부 센서부가 온도·습도 등 갖가지 수치를 측정하면, 그 데이터는 사용자 PC나 스마트폰으로 보내진다. 이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열람되는 것은 물론, 해를 거듭하며 누적돼 귀중한 자산이 된다.
노씨는 "그때는 이러했으니 이번엔 이래야겠다는 식으로 농장주가 상황에 따라 판단해 세팅 값을 입력하거나 수정한다"며 "이 세팅 값에 따라 컴퓨터가 연산을 거쳐 각종 모터 장치를 켜고 끄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농사를 잘 모르면 (다른 농장에) 가서 몇 년을 배워야 하지 않느냐"며 "스마트팜 시스템이 있다면 훨씬 과학적으로 관리가 된다. 과거 데이터를 이용해 미래에 대한 준비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노씨는 농장 3곳에 7개월에 걸쳐 스마트팜 시설을 구축해 전체 규모를 아버지가 운영하던 시절보다 2배로 늘렸다. 네덜란드 온실재배 관리 기업 '프리바'의 제어 시스템을 활용해 수경 재배하는 방식을 택했다.
온도, 습도, 광(光)량 등 재배 요인을 실시간 측정하고, 그래프를 작성하는 온실 자동 조절 시스템으로 지난해 13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도보다 20%나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노씨는 스마트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도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운영 초기 스마트팜 설비가 고장이 잦아 농작물 피해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세팅 값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실수도 많았다"며 "처음 배우는 동안에는 농장에 자정, 혹은 새벽까지 붙어있으면서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더라, 저렇게 하면 저렇게 되더라'는 식으로 배웠다. 배우는 비용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농업에 부는 4차 산업혁명 바람'을 주제로 노씨 외에도 화훼 분야 창업농 봄봄꽃농원 정유경 씨와 스마트팜 농작물 유통을 맡은 롯데마트 채소팀 봉원규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임상병리학을 전공했지만, 화훼산업에 꿈을 갖고 '맨땅에 헤딩'한 정유경 씨는 스마트팜을 통한 효율적인 화훼 재배로 연 순수익 1억2천만원을 올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판으로 귀농을 꿈꾸는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각종 홍보 행사와 강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씨는 "농부가 평생 직업이 되리라고는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며 "논에 파이프를 꽂고 하우스를 세우는 등 모든 작업을 알아서 다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초반에는 정말 뼈가 부서지도록 일했다"며 "농사를 지으면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이용하자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로 ICT 기술이었다. ICT 기술은 농업 경영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농사를 지으면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었다"면서도 "이제는 하우스 개폐기에 제어 장치를 붙여 해외여행을 나가서도 스마트폰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됐다. 생산성도 향상되고, 노동비도 절감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꽃의 장점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이라며 "꽃을 이용한 '힐링 테마파크'를 만드는 게 내 목표다. 꽃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롯데마트 봉원규 씨는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로 변하면서 이전에는 접할 수 없던 작물도 재배 가능한 환경이 돼 가고 있다"며 "이것은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할 기회"라며 스마트팜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날 행사는 미처 자리를 구하지 못해 길게 기다리는 줄이 생겨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귀농 콘퍼런스는 7일과 8일에도 이어진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귀농 콘퍼런스는 지난달 14일 온라인 사전 예약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마감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며 "사전 예약을 하지 못했더라도 현장 접수를 통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ts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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