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모성 탈피, 삶의 균형 찾는 여성들 에세이 잇따라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우리 사회에서 주로 여성에게 부과되는 육아의 책임과 강요된 모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30∼40대 엄마들의 에세이가 최근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웨일북),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아르테),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어크로스) 등이다.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는 김슬기 씨의 에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출산과 육아, 경력단절로 인해 깊은 우울증에 빠진 경험을 털어놓으며, 거기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탈출구로 독서를 꼽는다. 동네 도서관에서 마련한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가 심리학 도서들을 읽으며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이해하게 됐고, 이후 자신이 직접 독서 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책을 읽으며 1년에 100권 읽기에 도전한다.
저자는 독서를 통해 엄마로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는데도 사회가 헌신적인 모성과 '좋은 엄마'의 표준을 강요하면서 여성들이 자괴감과 수치심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브레네 브라운의 심리서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를 읽고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문제가 있어', '나는 너무 멍청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는 엄마야'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야.' 내 안에서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며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 세상에서 가장 지독하고 잔인한 평론가를 불러오는 감정, 이것이 바로 수치심이다. (중략) 여성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하는 'should be'가 얼마나 많은가.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를 시작으로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 '모유 수유를 해야 한다', '세 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 '일관된 양육 태도를 가져야 한다' 등 육아 지침은 넘쳐 난다." (19쪽)
저자는 스스로 엄마의 이상적인 모델을 자신의 엄마로 생각했음을 깨닫고 "언제나 깨끗한 집, 풍성한 엄마표 간식과 화려한 밥상, 무한한 이해와 배려, 넘치는 사랑"으로 자신을 감싸준 엄마처럼 되려고 애쓰지 않기 시작하면서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독서를 통해 자신을 되찾은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명령과 죄책감, 수치심과 불안, 두려움은 쓰레기통에 버리겠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나를 비난하는 대신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을 칭찬하겠다. 세상의 잣대가 만들어낸 내 모습 안에 숨어 있는 진짜 내 모습, 반짝이는 줄도 몰랐던 나의 조각을 찾아 어루만지겠다." (52쪽)
그가 이런 생각의 글을 올려 공유하는 네이버 블로그는 180만 뷰를 기록하며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는 부모교육 전문기업 '그로잉맘' 공동창업자이자 작가인 이혜린 씨의 에세이다. 저자는 독박육아를 하면서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그는 다섯 살 딸과 7개월 된 아들을 키우며 일과 살림 모두 해내고자 처절하게 고군분투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력단절'은 본인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육아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된 단절의 순간에 절망했고, 일하는 현장에서 "엄마가 일하면 애는 누가 키우나요?", "요즘 엄마들이 문제가 많아"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또 절망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 소환 찬스'를 쓰는 날이면 "너는 살림을 개떡같이 하고 이게 뭐니?"라는 잔소리와 비난을 듣는다. 아이들을 대동하고 하는 업무 회의는 화상으로 하든, 키즈카페에서 하든 난장을 피우는 아이들 때문에 요지경 속이 된다.
그는 이렇게 육아와 창업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미친 짓"임에 틀림없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삶이 좋다고 말한다. 생계 때문이 아니어도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나 자신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방어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가는 낮의 시간을 지나고, 밤이 되어야 비로소 작가의 이름 석 자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엄마가 일과 육아, 생활의 균형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는 MBC 라디오 PD 장수연 씨가 쓴 에세이다. 그 역시 "세상이 요구하는 모성애는 제게 없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일을 사랑하는 워커홀릭이었기에 임신을 하고서도 '아이를 지울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단다.
그는 상상한 적도, 선택한 적도, 준비한 적도 없이 임신하고 출산을 한 뒤 육아와 육아휴직, 복직을 경험하며 수많은 난관, 장벽들, 편견들을 만났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엄마가 되어 서투르고 실수를 반복하고 거듭 폐를 끼치고 때로는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했지만, 처음이기에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어쩌면 너무 당연한 과정이었다고 돌아본다.
또 이런 육아의 어려움뿐 아니라 아이를 낳고 달라진 것, 아이를 낳아서 달리 보게 된 것, 아이가 자신을 변화시킨 것, 천천히 스미는 모성애의 감정들도 들려준다. 워킹맘의 고민과 성장 이야기는 비슷한 처지의 많은 여성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킨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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