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야콥스-FBO '피가로의 결혼' 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작년 롯데콘서트홀의 콘서트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르네 야콥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FBO)가 지난 6일 같은 무대에서 다시 한 번 한국 청중을 매혹했다.
이번에는 '모차르트-다 폰테 3부작'의 두 번째 세계 투어 공연인 '피가로의 결혼'이다.
모차르트 시대의 연주 규모를 따른 37명의 건반악기 및 오케스트라 주자들은 청중을 18세기 초연 당시로 데려갔다. 당대 악기로 재현한 서곡은 일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피가로의 결혼' 서곡보다 소리의 질감 면에서 덜 매끄러웠지만 더욱 경쾌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이번 공연의 최대 강점은 역시 앙상블의 힘과 독창적인 유머코드였다. 함께 투어 공연을 하며 세계 여러 공연장의 상황에 적응하는 이 '피가로의 결혼' 팀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동선과 연기 호흡으로 '콘서트 오페라'라는 명칭을 무색하게 했다. 가수들이 정장 차림으로 보면대를 보며 노래하는 전형적인 콘서트 오페라가 아니라 역할에 어울리는 의상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유롭게 연기하는 세미스테이지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의외의 장면에서 의외의 연출과 연기가 이루어져 객석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소파 하나와 의자 몇 개로 무대 장치를 대신한 콘서트홀 무대에서 가수들은 오케스트라 연주자석과 지휘대, 건반악기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달리고 숨고 쓰러졌다.
특히 수잔나 역의 소프라노 임선혜는 1막에서 4막까지 무대를 종횡무진 달리고 춤추며 엄청난 에너지와 활력으로 빛을 발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공연 한 번에 3km 거리를 걷고 달린다"고 했다.
3막의 결혼식 춤 장면에서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합동결혼식을 치르게 된 바르톨로-마르첼리나 커플은 결혼식의 주역으로 멋진 춤을 선보이는 수잔나-피가로 커플 곁에서 황소와 투우사 연기를 펼치며 파소도블레를 춰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일반적인 오페라 공연에서라면 하객들이 등장해 군무를 출 장면이지만, 단 두 커플의 댄스만으로도 무대를 가득 채우며 청중을 즐겁게 해준 탁월한 연출이었다.
가수들이 무대 통로뿐만 아니라 객석 통로 여기저기서 등장한 것도 청중에게 신선한 재미를 느끼게 했다. 상당히 꼼꼼할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유머 감각이 돋보였던 번역자막도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쉴 새 없는 연구와 독서로 작품을 파고들어 그 지식을 연주자들과 공유하는 야콥스는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이 프로덕션 전체를 이끌었다.
그와 빈틈없는 호흡을 맞춘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비교적 템포가 느린 '편지의 이중창'이나 4막 바르바리나의 아리아 등에서도 가볍고 빠른 템포를 유지했다. 이 템포 덕분에 공연에서 종종 생략되는 바실리오의 '당나귀 가죽' 아리아까지 빠짐없이 보여주면서도 휴식시간 포함 3시간 25분의 연주시간이 가능했다.
출연진 모두 가창과 연기가 뛰어났지만, 이날 청중의 가장 큰 갈채를 받은 가수는 수잔나 역의 임선혜와 타이틀 롤을 맡은 캐나다 베이스바리톤 로버트 글리도우였다. 로버트 글리도우의 풍부한 성량과 넘치는 자신감, 치밀한 표현력은 커튼콜 때 열광을 끌어냈다.
바지역(여성이 남성 역할을 하는 배역)인 케루비노 역을 노래한 네덜란드 메조소프라노 올리비아 버뮬렌도 청중의 사랑을 받았다. 국립합창단 16명의 합창도 전체적인 공연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이번 공연의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모차르트 시대의 고전주의가 목표로 했던 조화와 자연미, 균형과 절제 등의 모든 예술적 미덕을 구현한 공연이어서, 정식 오페라극장 공연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 거의 없었다.
다만 좌석 위치에 따라 유난히 차이가 느껴지는 콘서트홀의 음향은 이번에도 애호가들의 토론 거리가 되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7일 오후 5시에 한 번 더 공연된다.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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