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중동 분쟁, 무관심과 침묵 속에 악화하고 있어"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기독교 종파 지도자들이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남동부 항구 도시 바리에 모여 전쟁과 내전의 포연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중동 평화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아드리아 해에 인접한 바리는 수 세기 동안 중동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해온 곳이자,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등 종파를 초월해 추앙받고 있는 인물인 4세기의 기독교 성인 니콜라오 성인의 유해가 안치돼 있는 곳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청으로 성사된 이번 회동에는 동방정교회의 수장인 바르톨로뮤 1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이집트 콥트정교회의 교황 타와드로스 2세, 러시아 정교회의 2인자 메트로폴리탄 힐라리온 등 범기독교 지도자 약 20명이 참석했다. 지난 달 교황에 의해 새 추기경으로 임명된 루이스 라파엘 사코 이라크 바그다드 대주교도 자리를 함께 했다.
참가자들은 먼저 바리의 성니콜라스 대성당에서 니콜라오 성인의 유해 앞에서 중동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지난 1천년 동안 분열된 기독교의 통합을 상징하는 평화의 촛불에 불을 붙였다.
이들은 이어 오픈 버스에 나란히 올라 바리 해안가로 이동, 약 7만 명의 군중과 어우러져 중동 평화를 기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기독교 지도자들과의 회담과 기도에서 "문명의 교차로이자 위대한 일신교의 요람인 중동이 전쟁의 먹구름과 폭력, 파괴, 점령, 근본주의, 난민, 방치로 얼룩지고 있다"며 이 모든 것이 많은 사람들의 극단적인 무관심과 침묵의 공모 속에 일어나고 있다고 한탄했다.
교황은 "장벽과 권력을 과시함으로써 유지되는 휴전은 진정한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오직 상대방의 말을 듣고, 대화를 하려는 구체적인 의지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어 석유와 가스 등 중동의 자원을 노린 소수가 많은 사람들의 고통에서 이득을 취하는 행태, 점령 행위, 사람들을 서로 분리하는 악습을 끝내자고 강조했다.
교황은 또 "중동 내 많은 갈등이 종교를 위장한 근본주의와 광신주의의 형태로 촉발되고 있다"며 종교적 극단주의를 경계했다.
교황은 아울러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 교도 모두에게 신성한 예루살렘의 경우 '현상 유지'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재차 피력했다.
교황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12월 텔아비브에 있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발표한 이래, "중동에서의 새로운 갈등은 세계 분쟁을 증폭시킬 것"이라며 예루살렘의 현재 지위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교황은 이밖에 중동 분쟁이 격화하며 이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급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교황은 "신앙을 가진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이 이 지역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며 "기독교도가 없는 중동은 (진정한)중동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교황청 산하 기관에 따르면 중동의 기독교 인구는 1차 세계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20%에 달했으나, 현재는 4%로 급감한 상황이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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